반쪽자리 자치경찰, 권한은 중앙에 묶이다

[지역 대표신문 2개사 공동기획] 지방분권 실현의 첫단추 '자치경찰제' 1948년 논의 시작 2021년 전국 시행 지휘·인사·예산 여전히 국가경찰 종속 주민밀착형 치안 목표… 지역 특성 반영 한계 조직은 국가에 권한만 분리된 일원화 모델 실효성 낮은 행정 반복… 제도 취지 퇴색 새 정부, 이원화 검토하며 개편 예고

2025-10-20     충청투데이
경찰.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지역의 치안을 지역이 스스로 책임지는 분권의 상징인 자치경찰제. 주민 의견과 지역 특성을 반영해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첫 단추로 불려왔다. 그러나 시행 5년 차를 맞이한 지금,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지휘·감독권은 제한적이고, 인사권과 예산권 역시 중앙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주민과 가장 가까운 지구대와 파출소마저 국가경찰 지휘를 받는 구조 속 ‘무늬만 자치’라는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동취재단은 자치경찰제의 현주소와 제도적 병목을 짚어보고, 지역 치안의 실질적 자치를 위한 과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자치경찰제가 국내에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사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국내 자치경찰제 논의는 1948년 정부조직법 제정 당시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처음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치안 불안과 6·25 전쟁 발발 등의 이유로 도입은 무산됐다.


이후에도 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은 지속됐다. 1955년 자치경찰제 요소를 담은 법안이 상정·심의됐지만 제출되지 못했고, 1960년에는 국립경찰과 자치경찰 이원화 방안이 논의됐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해당 안도 자연스럽게 폐지됐다.

그러던 1991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한 논의도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04년 제정된 ‘지방분권특별법’에서 자치경찰제의 도입이 국가 의무사항으로 규정되며 제도화가 본격화됐고, 이후 역대 정부에서는 다양한 자치경찰 모형이 검토돼 왔다.

최종적으로 2021년 국회에서 국가경찰사무와 자치경찰사무를 구분하고 시·도지사 산하에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경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지방자치 부활 30년 만에 자치경찰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자치경찰은 지역사회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조직으로, 범죄 예방과 교통 관리, 지역 사회안전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업무를 맡는다. 하지만 제도 시행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질적 권한 부재와 제도적 한계로 인해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정부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을 분리하는 ‘이원화 모델’을 구상했다. 그러나 재원 조달 문제와 치안 공백 우려로 결국 조직은 국가경찰로 유지한 채 사무만 분리하는 ‘일원화 모델’이 채택됐다. 이로 인해 자치경찰은 실질적 권한 없이 출범했고, 제도 시행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근본적 한계는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

대표적인 문제가 지휘·감독권 제약이다. 지구대와 파출소는 여전히 국가경찰 소속으로 남아 있고, 자치경찰위원회는 공문 지시 외에 직접적인 지휘 권한이 없다. 인사권도 경정 이하 일부에만 한정돼 있어 실질적 통제력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예산 또한 시·도지사가 편성하더라도 경찰청 의견을 반영해야 해 독립 편성이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자치경찰제는 출범 초기부터 ‘반쪽짜리 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제도의 취지와 기대는 높지만 실질적 권한이 부재한 제도 설계 탓에 주민 체감 효과는 낮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흐름 속,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고, 이원화된 자치경찰제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구상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담았다.

새 정부가 자치경찰제를 다시 국정과제로 올리고 이원화 모델 전환을 추진하면서 제도는 다시 분기점에 서게 된 것이다.

▲ 강경량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 강경량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자치경찰제, 본질적 목표 달성엔 구조 개편 필수’"

강경량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은 자치경찰제도 도입의 본질적 목표 달성을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방분권 실현 및 주민 밀착형 치안, 지역 맞춤형 대응 실현 등을 목적으로 자치경찰제도가 도입됐지만 현행 제도상 업무 분리만이 규정돼 실질적인 제도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강 위원장은 "자치경찰제의 도입 목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역특화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며 "하지만 일원화된 구조인 현행 자치경찰제도로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는 자치경찰제 도입과 함께 출범했다.

현행법에 따라 △주민 생활안전 및 치안약자 보호 △교통활동 △다중운집행사 관리 등을 담당, 경기남부지역 내에는 2600여명이 지역 맞춤형 치안 정책 발굴 등에 노력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경기남부지역은 자치행정과 치안행정의 융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고, 기존 전국 단위의 통일된 정책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별 치안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경기도 안전귀가 서비스를 활용한 달빛 동행 서비스나 교통공학 기술분석 사업을 통한 신호체계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강 위원장은 지역 내 특성을 반영한 치안 정책 발굴 등을 위해선 지속적인 제도 운영과 확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구조적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현행 자치경찰제도는 경찰조직과 인력은 유지하되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사무만이 분리된 구조"라며 "지금의 자치경찰제로는 도입의 본질적인 목표를 실현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사무뿐만 아니라 인사와 조직 등에서 완전한 분리가 이뤄진 이원화된 모델의 전면적 도입이 필수적이다"며 "주민밀착형 치안 서비스 제공이라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고 효율성과 책임성, 자율성을 갖은 자치경찰을 위한 검토가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 박 희 용 대전자치경찰위원장

◆박희용 대전자치경찰위원장 "자치경찰의 핵심은 ‘주민참여’’"

박희용 대전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은 중앙집중적 지휘 구조와 재정 불균형, 실질적 인사권 부재 등이 지방 치안의 자율성을 가로막고 있다며 자치경찰제 내실화를 위한 구조적 개편을 촉구했다
.

자치경찰제가 시행 5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권한과 재원, 책임이 분산된 구조 속에서 지방 치안의 자율성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다.

박희용 위원장은 "자치경찰은 이미 제도적으로 도입됐고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이름만 자치에 머문다면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전국 단위 지침과 획일적 평가가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적용되고 있어 불필요한 단속과 행정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먼저 구조적 문제의 핵심으로 권한·책임·재원의 불일치를 꼽았다.

지구대와 파출소가 담당하는 생활치안은 자치사무로 분류되지만, 경찰관의 신분은 국가경찰에 묶여 있어 중앙의 지휘체계와 현장 상황이 충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위원장은 "수사·정보·경비와 같은 전국 단위 사무는 국가경찰이 맡고, 주민 생활과 직결된 치안은 자치경찰이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권 문제 역시 자치경찰제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현재 자치경찰위원회는 인사권을 행사하기보다 경찰청 인사안에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는 "자료와 전담조직, 징계 권한도 없이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건 보여주기 행정에 불과하다"며 "독립적인 인사 인프라를 구축해 실질적인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구조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현재는 시청 예산부서가 치안사업을 심사하는 구조로, 치안 전문성이 없는 부서가 경찰 예산을 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

박 위원장은 "경찰 몫의 예산을 총액으로 교부하고 내부에서 편성·집행한 뒤 의회가 사후 통제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교통 과태료와 범칙금은 국고로만 귀속되는데, CCTV 운영비와 범죄예방 예산은 시가 부담하는 구조적 모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치경찰제가 지향해야 할 핵심으로 ‘주민참여’를 꼽았다.

박 위원장은 "주민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것이 자치경찰제의 출발점"이라며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져야 제도가 살아 움직인다"고 말했다.

실제 대전 자치경찰위원회는 전국 최초로 ‘시민참여형 공동체 치안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지구대·파출소 단위에서 주민 회의를 정례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도 추진 과정에서 정치적 변수가 존재하더라도 자치경찰제의 방향성 자체는 되돌릴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자치경찰제는 이미 시작됐고 역행은 불가능하다"며 "권한과 책임, 재원을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청투데이 조사무엘·함성곤·경기일보 김도균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