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숨겨진 효도

효문화신문

2025-10-16     충청투데이
▲ Gemini AI 제작 이미지

얼마 전 일이다. 함께 야학을 하고 있는 70대 급우(할머니)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어제는 몸이 안 좋아서 결석하려고 했는데 딸내미가 어찌나 야단을 치는지 딸이 무서워서 그만 아픈 몸을 이끌고 등교했지 뭐예요!"

반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 하신 ‘어르신’의 어떤 하소연이었다. 그래서 궁금증 반 호기심 반이 충전된 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오신 거예요?"

"그럼요! 나에게 ‘이왕지사 늦게 시작한 공부라지만 하려면 악착같이 하라’는 딸내미가 선생님보다 무서워요."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 급우에게서 새삼 면학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학교는 평균 연령이 60~70대의 고령인 분들이 주를 이루는 중고등 과정 학교다. 헐벗고 굶주렸던 지난 1950년대 전후에 태어난 대부분의 급우는 정상적인 학업의 지속이 어려웠다.

따라서 통한의 그 한을 풀기 위해 비록 많이 늦었다고는 하지만 이제라도 공부라는 열정의 바다에 뛰어든 것이었다. 이 같은 궤도는 나도 매한가지다. 물론 고령에 공부를 하려니 힘이 드는 것은 속일 수 없다.

체력적 고갈에서부터 기억력의 감퇴는 어제 배운 공부까지 깡그리 잊게 하는 낭패감까지 격한 파도로 몰고 온다. 그래서 ‘공부도 다 때가 있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서도 각자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나 환경이 있다는 것은 불멸의 어떤 명제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공포감(恐怖感)을 가지고 있다. 공포는 때로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본능적인 감정의 역할도 한다. 그러나 그 장르는 기시감이나 미지의 것에 대한 경계심 또는 과거의 경험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등 각양각색의 종류를 지니고 있다.

아무튼 어떤 공포든, 그 감정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학생은 본능적으로 선생님이 어렵고 때론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다.

할머니 급우께서는 딸이 선생님보다 무섭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령의 어머니가 야학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며 이를 적극 응원하고자 하는 따님의 숨겨진 효도가 숨어 있었음을 나는 충분히 간파할 수 있었다.

<홍경석 명예기자>



스마트폰 없는 추석 명절

연휴가 긴 명절에는 스마트폰을 할 시간이 많아서 나와 같은 청소년들은 기대가 된다.

특히 이번 추석 명절은 연휴가 10일이나 되어서 내심 기대가 컸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사촌들과 스마트폰 게임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스마트폰 없는 추석 명절을 보냈다. 엄마와의 약속도 있었고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추석에 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를 모시고 ‘영동세계국악엑스포’에 다녀왔다.

평소 같았으면 차 안에서 게임만 하느라 어른들이 하시는 대화나 질문에도 잘 대답하지 못했을 텐데, 이번에는 어른들과 같이 대화도 하고 웃기도 하며 이동할 수 있었다.

또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우산을 들어드리고 자리를 봐 드리는 일 등 챙겨드릴 일이 많았는데, 평소에는 엄마가 다하셨을 일이지만 그날은 나와 형이 많이 도와드릴 수 있었다.


원래라면 형과 게임 하면서 다투어 엄마에게 혼이 나고 분위기를 흐렸을 텐데, 확실히 다투거나 혼나지 않으니 기분이 좋았다.

또 축제장에서까지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나를 보시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지난 여름 일본 여행을 다녀왔을 때처럼 많이 속상해 하셨을 것 같다.

스마트폰을 하지 않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모두 이번 명절은 기분 좋고 행복한 명절을 보내신 것 같다.

내가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명절 내내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스마트폰 때문에 어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내가 챙기고 배려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스마트폰 없이 긴 추석 연휴를 보냈지만 감사하다. 이전에 내가 할 수 있었던 효를 실천하지 못했고, 우리에게 스마트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어느 명절보다 뜻깊은 명절이었던 것 같다.

<조우진 명예기자>



변하는 시대 속 변하지 않는 마음



요즘 사회에서는 효라는 단어가 점점 낯설게 들린다.

스마트폰 속 일정표는 빽빽하고 주말에도 일이나 공부로 바쁘다 보니 부모님께 전화를 한 통 드리는 일조차 미루게 된다. 예전에는 부모님 곁에서 자주 얼굴을 보며 안부를 전하던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화면 속 문자나 짧은 영상통화가 전부가 되어버렸다. 시대가 변하고 가족의 형태도 달라졌지만, ‘효’의 의미는 여전히 우리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존재가 너무 당연해서 그들의 희생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우리가 어른이 되고 세상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 그제야 부모님이 왜 늘 피곤한 얼굴로도 웃어주셨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깨달음이 바로 효의 첫걸음이다.

최근에는 현대적 효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는 단순히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모님께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드리거나, 함께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효도의 한 형태다. 서로의 세상을 공유하고 이해하려는 그 시간 속에서 가족은 다시 가까워진다. 물론 효를 실천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께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어떤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효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진심이 쌓여 만들어지는 마음의 기록이다.

코로나19 이후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시기일수록 효의 가치가 더 빛난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안부를 묻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따뜻한 방식이다. 효는 단순히 옛 세대의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일깨워주는 삶의 철학이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랑에 작은 관심과 감사로 답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효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김수아 명예기자>

[이달의 칭찬대상자]
이름 및 소속 : 여재구 (㈜경남기업)
추천자 : 송미경 (대전맹학교)

여재구 님은 밀알단기보호센터(장애인거주시설) 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재가장애인 야유회, 캠프 등에 차량 및 식사를 제공하여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여가생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원회를 조직하여 지역사회의 어려운 장애인 및 노인들의 집수리 및 도매를 지원해 주기도 하며, 매년 겨울에는 독거장애인 가정에 김장김치를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