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꽃시단] 살림과 실체
권누리(1995~ )
2025-09-30 충청투데이
이따금 수목원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싶다
내가 나와 함께 신도시의 산책로를 걸을 때
최선으로 단단하게 묶은 새 운동화의 매듭처럼
나를 자주 놓치곤 했으며,
마음은 이곳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이제야 겨우 나의 반절만큼 자라난 어린 나에게
이유 없는
초봄에 내리는 눈은 지난해 흘린 눈물의 양과 닮았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인의 감성이 도드라진다. 이따금 수목원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다고. 자신을 자주 놓치면서도 그것을 모른 체한다고 하니. 자작나무 뒤에 가서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것인가. 그 사이에 술래는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겠지. 아니면 요즘 피어난 꽃무릇에 취해 가을 햇살 받아 발갛게 서 있고 싶은 것인가. 그런데 꽃무릇이 상사화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운동화 끈은 풀기 위해 묶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저러한 빈틈을 위해 우리는 수목원에 가는 거다. 그래. 그 빈틈을 비집고 네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너를 기다릴 틈도 없이 가을은 저무는 것. 숲에서 가장 빨갛게 물이 드는 것은 화살나무다. 제 가슴 안으로 무수히 화살을 쏘아 올렸으니 붉게 멍이 든 셈이지. 그 사이 마음만 부쩍 자라나 내 반절만큼 어린 나에게 이유 없는 슬픔을 다 뒤집어씌운다. 초봄에 내리는 눈의 양은 그리 많지 않으니. 그것은 지난해 흘린 눈물이 적기 때문일 것. 그래도 나는 슬프지 않고 싶은 것이다. 절대로 울고 싶지는 않은 까닭이니. 그래서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 김완하(시인. 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