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공간의 재발견
안동순 천안문화재단 대표이사
2025-09-29 충청투데이
건축가 유한준 교수는 도시를 ‘시퀀스(sequence)’, 즉 시간 속에서 경험되는 연속적인 장면들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도시의 진짜 얼굴은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참여하는 일상 속 공간의 순서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는 이 시퀀스에 감정을 입히고 기억을 남기며, 도시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든다. 문화는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공간은 문화를 품으며 성장한다. 그래서 도시의 미래를 말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건축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떻게 문화가 흐르고 있는가’를 함께 확인하게 된다.
최근 천안시는 구도심 재생과 문화 공간 확장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그 중 천안역 일대는 대표적인 변화를 겪는 공간 중에 한 곳이다. 수도권과 지방을 잇는 광역교통의 중심지이자 오랜 시간 지역의 관문이었던 천안역 일대는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스타트업 파크 조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가 한창이다.
전통 상권의 재편과 함께 문화예술 공간이 유입되면 이 지역은 단순한 교통 중심지를 넘어 사람과 이야기가 머무는 문화적 거점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재생이다.
또한, 도시 공간은 건물과 도로가 이어진 물리적 기반시설만이 아니다. 그 자체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고 예술적 상상력을 끌어내는 중요한 재료가 됐다. 오래된 폐공장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고 단순한 주차공간을 야외극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중요한 건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다.
충남 최초의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천안은 ‘문화브릿지’ 사업을 통해 도심의 유휴공간을 생활문화 거점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시재생과 연계해 리모델링된 ‘남산문화창작소’는 1층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생활문화프로그램과 지역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층에서는 청년 창작자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을 운영하며 청년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천안문화재단 문화사업국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의 ‘대강당과 공간모아 전시실’은 시민 친화형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며 일상 속에서 문화와 만나는 기회를 확장했다. 이러한 공간 재구성은 청년 작가와 주민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창작과 참여가 동시에 이뤄지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 뼘 미술관’은 공공시설의 유휴 공간을 지역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 시민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예술을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가까운 일상 속에서 예술과 만나는 경험이 시민들에게 새로운 문화 감수성을 심어주는데 부족하지 않다.
신부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 명소 조성 사업’은 문화와 공간을 연결한 대표적 시도다. 2023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플리마켓 △버스킹 △스트릿댄스 △DJ 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며 청년 예술인들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 무대를 제공해 신부문화공원을 지역의 문화 거점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공간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공공의 공간이 예술을 통해 열릴 때, 그곳을 찾아오고 경험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도시의 공간은 단지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대상이다.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문화는 그 도시만의 색깔을 찾아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형적 정비에 그치지 않고 주민과 예술가, 행정이 함께 참여해 ‘문화의 흐름’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천안이 만들어가고 있는 문화공간의 변화는 단지 도시재생이 아닌 도시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시작점이다. 앞으로도 천안이 공간과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