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항암 치료… 정밀 의학으로 ‘맞춤형 시대’ 연다
수술 후 항암치료, 환자 특성 따라 선택 MSI-H 등 유전자 분석 기반 치료 주목 불필요한 치료 줄이고 생존율 높여 기대
2025-09-23 이재범 기자
[충청투데이 이재범 기자] 위암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대표적인 암으로 꼽혀왔다. 다행히 조기 진단 기술과 수술법의 발달로 많은 환자들이 완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2기와 3기 위암 환자의 경우, 수술 후에 항암 치료를 추가로 받는 것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은 지는 이미 10년이 넘는다.
이로 인해 재발률이 낮아지고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항암치료는 결코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치료가 아니다.
위암 수술 후 지친 몸과 마음으로 다시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환자에게 또 다른 큰 시련이다. 치료 도중 발생하는 구토, 설사, 손발저림 같은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 직장을 쉬거나 병원에 자주 방문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도 크다.
항암제를 조제하고 투여하는 데 드는 사회적·경제적 비용 역시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과연 이런 치료를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정답일까? 최근 들어 의료계는 ‘모두에게 같은 치료’ 대신 ‘나에게 맞는 치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정밀 의학(Precision Medicine)’이라는 새로운 의료의 방향이 그것이다.
◆정밀 의학이란 무엇인가?
정밀 의학이란 환자의 유전 정보, 질병의 분자적 특성, 생활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누구에게 어떤 치료가 가장 효과적일지 미리 예측하고 치료하는 방법’이다.
이제는 개별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기반으로 맞춤형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위암에도 ‘맞춤형 항암치료’의 필요성 대두
최근 발표된 연구들에 따르면, 일부 위암 환자들은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아도 생존율 향상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반면, 특정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환자들은 항암 치료에 매우 잘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MSI-H (Microsatellite Instability-High) 위암이다. 이 유전자 유형을 가진 환자들은 면역 반응이 활발하고, 일반적인 항암제에는 반응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일부 연구에서는 MSI-H 환자에게는 수술 후 항암치료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도 보고된다. 그러면서 이러한 환자군을 선별해 치료 강도를 조절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또 최근에는 환자의 유전 정보나 종양의 분자적 특성을 분석해 항암치료의 필요성을 더 정밀하게 판단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유전자 발현 기반 분석 기법(nProfiler®)은 종양 조직에서 발현되는 특정 유전자들의 패턴을 바탕으로, 위암 수술 후 항암치료가 실질적인 생존율 향상에 기여할 환자군을 선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혈액 속에 떠다니는 미량의 종양 유전자를 분석하는 ‘순환 종양 DNA(circulating tumor DNA, ctDNA)’ 검사도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수술 후 몸에 암세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어, 정말로 항암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선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일상 진료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않지만, 향후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한 항암치료는 줄이고 필요한 사람에게만"
물론 아직까지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이 당장 진료 지침(guideline)에 반영될 정도로 충분한 근거를 갖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 성과들이 축적되고, 위암의 분자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머지않아 위암 수술 후 보조항암치료도 ‘선별적’으로 시행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지금까지는 "2-3기 환자는 수술 후 보조항암치료가 필수"라는 기조가 우세했다면, 앞으로는 "누가 정말로 항암치료가 필요한지"를 먼저 판단한 뒤 치료를 결정하는 시대로 옮겨갈 것이다.
윤종혁 순천향대 천안병원 교수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만을 제공하고 불필요한 고통과 비용은 줄이는 것이 정밀 의학의 궁극적인 목표"라며 "치료의 정답이 하나가 아닌 시대, 이제 위암 환자에게도 ‘나에게 맞는 치료’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움말=윤종혁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외과 교수
천안=이재범 기자 news7804@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