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窓] 초고령사회, 사라져가는 이동의 권리

정미경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심리상담학부 교수

2025-09-21     충청투데이

지난 8월, 필자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 개발을 위해 일본사회사업대학을 방문했다. 도쿄 기요세시에 위치한 이 대학은 일본 사회복지정책 교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나코가네이(花小金井)역 앞에서 택시로 이동하려다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택시 승강장에서 30분을 기다려도 택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택시 호출 앱을 설치해 보았지만, 호출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더운 날씨 속에서 10여 분을 걸어 버스 정류장을 찾아 버스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동행한 한 교수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외래 교수로도 활동했지만, "하나코가네이역에서 택시를 잡지 못할 줄은 몰랐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는 것이다. 택시 운전사의 고령화와 은퇴, 그리고 젊은 세대의 부재로 인해 도쿄 외곽에서는 이미 이동의 공백(택시부족)이 일상이 돼 있었다.


이는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초고령화의 한 단면이다. 고령화는 의료·돌봄을 넘어 교통과 이동권까지 위협한다. 병원을 찾아야 하는 노인, 출근길의 직장인, 돌봄 현장을 오가는 사회복지사 모두가 교통망에 의존한다. 교통이 끊기면 삶도 멈추고 지역도 흔들린다.

이에 도쿄도는 대안으로 ‘라이드 셰어(Ride Share)’ 서비스를 도입했다. 자가용을 택시처럼 활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교통망을 보완하려는 시도다.

이 문제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미 농촌 지역에서는 버스 기사 고령화와 노선 축소로 대중교통 공백 또는 부족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하루 몇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로 인해 노인은 병원 진료를 포기하고, 학생들은 통학에 큰 불편을 겪는다.

도시 역시 예외가 아니다. 택시 기사 평균 연령은 60세를 넘어섰고,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젊은 세대는 이 직업을 외면한다. 머지않아 도심은 택시가 넘치는데, 변두리에서는 발이 묶여서 고통을 겪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첫째, 기술 기반의 교통혁신이다. 자율주행차, 플랫폼 모빌리티, 마을버스형 공유 교통 등 지역 맞춤형 교통 대안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둘째, 노동 환경의 개선이다. 장시간 근무와 낮은 임금 구조를 개선하고 안전·복지를 강화해 젊은 세대가 선택할 만한 직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교통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셋째, 정책의 우선순위 전환이다. 교통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기본권이다. 이동이 끊기면 돌봄도 교육도, 결국 공동체 전체의 삶이 흔들린다.

하나코가네이 역에서의 기다림은 작은 불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초고령사회가 던지는 커다란 질문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이동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지금 답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마을과 도시 역시 조용히 멈춰 설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