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폭염과 추락, 보이지 않는 일터의 위험

장재훈 열린노무법인 대표노무사

2025-09-11     충청투데이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은 기상 이변으로 인한 극한의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과 예측 불가능한 돌풍은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가장 안전해야 할 ‘일터’마저 위협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5월까지의 여름철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 신청 및 승인 건수는 2020년 14건에서 매년 증가해 2024년에는 신청 57건(승인 51건)을 기록했다. 2025년의 경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기 이전인 5월까지의 온열질환 산업재해 신청 및 승인 건수를 집계했음에도 불구, 총 8건이 신청돼 모두 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_온열질환 산재보험 최초요양 신청 승인 현황)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 6월 이후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온열질환으로 근로자들이 산업재해를 겪었을지는 자명하다.

떨어짐, 즉 추락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온열질환처럼 무시무시한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발생 빈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중이다. 안전보건공단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전체 사망 사고 원인 중 ‘떨어짐’ 사고는 전체 사망 사고의 33.6%(278건)에 달했다. 같은 기관에서 발표한 다른 자료(2025년 1분기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025년 1분기까지 이미 ‘떨어짐’ 사고로 인해 7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산업재해의 발생 원인 중 폭염과 추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양자 모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일수 증가 속에서 근로자 개인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높은 작업장 온도로 인한 신체의 이상 증세 발생을 예방할 수는 없다. 추락 사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근로자 스스로 최선의 노력으로 조심하고 주의하더라도 실수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추락 사고가 발생하는 현장이 실외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을 동반한 실외에서의 고층 작업이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는 분명한 일이다.

종종 산업재해는 건설 현장이나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현장직, 기능직들에게 국한된 얘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재해 발생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한 라이더, 야근 중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사무직 노동자, 감정 노동으로 인한 우울증을 겪는 서비스직 종사자 등, 직종을 불문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산업재해는 개인의 불운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기업은 안전 시설 투자와 정기적인 안전 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법적 규제를 강화하고, 사업장의 안전 관리 실태를 엄격하게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산업재해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폭염의 그늘 아래, 그리고 높은 곳의 위험 앞에서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돼야 합니다. 폭염과 추락으로 인한 슬픈 소식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