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꽃시단] 고향, 다시 강가에

윤중호(1956~2004)

2025-09-09     충청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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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라 돌아가라
펑펑 내리는 눈 맞으며
금강에 서면, 고향, 저녁 안개 속으로
빈 들녘은 저물어가고, 나는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아왔지만

고향 강만큼 낮게 흐르지 못하고
뒷구리 감나무처럼, 허허허
굽어웃지 못했다, 슬금슬금
완행열차만 서는 곳이지만
할머님은 돌아가시고, 객지에서 돌아온
경운이형도 다시 객지로
돌아갈 채비만 하는 곳
잡풀 사이로 부는
강바람을 따라, 나는 또
어디로 돌아가라고
자꾸만 내려쌓이는가
눈, 눈, 눈

지난주 토요일(9월 6일) 영동문학관 앞에 윤중호 시인의 이 시를 새겨 시비를 세웠다. 윤중호 시인은 1956년 영동군 심천면 심천리 314번지에서 출생했다. 1982년 숭전대학교(현 한남대)를 졸업하고 1983년 『삶의문학』, 198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1982년 『여고시대』 편집기자, 1985년 『우리시대』 편집장, 1988년 『새소년』 편집주간을 거쳐 1990년 들풀기획사를 창립하고 1996년 『세상의 꿈』을 창간했다. 시집 『본동에 내리는 비』, 『금강에서』, 『靑山을 부른다』, 어린이 책 『감꽃마을 아이들』 등이 있고, 2004년 작고 이후 유고시집 『고향 길』과 시전집 『詩』 출간했다.

윤중호의 시는 고향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 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공동체 의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엄니를 비롯하여 가족, 이웃과 이들 삶의 토대가 되는 지역의 고유어, 지명 등을 통해 구체화되면서 우리 모두 돌아갈 고향과 잇닿아 있다. 그는 자연과 삶을 사랑하였고 ‘아름다운 사람의 길’을 추구하며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따뜻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

윤중호의 시를 돌에 새겨 영동문학관 앞에 세우지만 그것은 윤중호를 돌 속에 가두고 땅에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와 삶을 굳게 갇힌 돌 속에서 꺼내고 흙 속에서 살려내 우리 마음속에 온기로 간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못다 부른 노래를 이어 금강 위로 함께 흐르게 하는 것이다.

-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