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을을 맞는 법
김도환 문의구룡예술촌장
2025-09-04 충청투데이
흰 이슬의 백로(白露)가 내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이 늦여름에 매년 맞는 계절의 현상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모두가 희망한다. 작년에는 내가 어떻게 이 계절을 보냈고 견뎌냈는지 의문이다. 올해 태풍 없는 여름과 무더위를 맞았고 처서가 지난 오늘까지도 주야를 가리지 않고 더위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9월에는 전혀 달랐다. 하루가 다르게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사 살 것만 같은 날씨와 기온이 다가왔다. 덥다고 한때는 원망하던 더위도 굳이 보내지 않아도 떠날 때를 아는 이별의 월력이다. 정색을 하며 반기는 가을이 그리웠겠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법정의 말은 절망을 넘어 긍정의 변화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또한 천양희 시인의 ‘지나간다’ 詩에서는 삶의 곡절과 깨달음과 덧없음을 바람이 소리치며 지나간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청춘, 고독, 슬픔, 허무도 지나간다. 방황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불가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이자 중심사상이다.
이 가을을 맞기 전 나는 행로의 여정을 보길도로 갔다 왔다. 동천석실에서 선계 같은 풍광을 보았고 세연정에서 원림과 함께 고산(윤선도)의 유배지를 대면하였다. 망끝전망대에서 낙조와 예송마을에서 몽돌을 밟으며 ‘차르르’ 하고 빠지는 바닷물 소리를 듣고 왔다. 돌아온 문의 들에는 때 이른 작은 코스모스꽃과 야생화, 억새 하얀 꽃이 반기고 있었다.
가을볕은 설익어 산야초들은 제 색을 내지 않는다. 조붓한 들길을 걸었다. 생각은 지난 여행과 다가올 가을을 맞는 법을 구상한다. 지난 정초에 계획한 일들의 진행도 함께 가늠하였다. 길섶의 풀들이 여물지 않은 씨를 달았다. 자연의 섭리와 만물의 현상은 조급하지 않게 서서히 익어간다. 오직 인간만이 조급하거니 빨리를 외치며 동당거린다.
그래 다녀오길 잘했어. 모든 것 인연 따라 오고 필연적 이별과 지나감이 모든 삶인 것을 우리는 안다. 햇발도 성글어지면 기운을 잃고 낙조가 되듯 낙엽되어 떨어지는 가을이 곧 오겠지. 그때 나는 또 다른 계절을 맞고 방황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