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원, 단순 강의장 아닌 참여형 공간으로 만들 것”
[월요인터뷰] 구자홍 목원대 문화예술원장 CEO과정·실용적 프로그램 동시 운영 지역 강사 초빙 현장 중심 학습 확대 비노클래식 통해 현악기 체험 제공 지역 문화예술 기여… 시장 표창 받아 비노스트링 설립해 장애인 고용 실천 건강한 수제 현악기 보급·대중화 박차 예술·사회 잇는 징검다리 역할 매진 악기·음악으로 위로·용기 전달할 것
[충청투데이 조사무엘 기자]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는 이가 있다. 구자홍 ㈜비노클래식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다섯 살에 화상으로 손가락에 장애를 입었지만, 좌절 대신 새로운 가능성을 택했다. 비올라로 음악의 문을 열고,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7년간 장인의 길을 닦으며 그는 결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현악기 명장)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장인의 기술은 다시 지역사회의 희망과 어울림으로 되살아났다. 그는 비노클래식을 통해 장애인에게 일터를, 지역사회에는 울림을 건네고 있다. 최근 목원대학교 문화예술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이제 예술과 경영을 아우르는 교육 무대를 설계하며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선다. 충청투데이는 구자홍 문화예술원장을 만나 그의 여정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 목원대학교 문화예술원장 취임 소감과 운영 방향은.
"그동안 문화예술원은 CEO들의 교류 또는 문화예술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취임 전부터 문화예술원만의 특별하고 새로운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번에 새롭게 원장을 맡으며 문화예술원을 능동적·참여형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싶다. 앞으로의 문화예술원은 현재의 CEO 과정에 더해 실용적인 과정들을 병행하는 투트랙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강사진도 서울 등 외부 인사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할 계획이다. 문화예술원이 단순 교류 공간을 넘어, 지역 리더들이 실제로 필요한 문화예술적 역량을 배우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문화예술원이 학교와 지역사회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 문화예술원장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수업을 받는 학우 입장에서 늘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목원대학교가 중부권 사학의 문화예술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점차 위상이 약화되는 현실이 무엇보다 마음 아팠다. 문화예술은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무대에 서고,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회를 열어보는 등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전문 연주자와 함께 무대를 꾸미거나 전시를 직접 기획하는 과정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성취감을 줄 수 있다. 문화예술원이 단순한 강의장이 아니라, 교육생들이 로망을 실현하고 자신감을 얻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주자와 제작자, 예술경영을 모두 경험한 내 이력이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다고 믿었고, 학교도 같은 변화를 원했다. 목원대 문화예술원이 예술경영과 교육, 그리고 실천이 결합된 전환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 개인적인 삶을 돌아본다면.
"197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끓는 물에 손을 데어 왼손에 큰 화상을 입었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손가락은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성장판까지 손상이 와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청소년기에 남과 다른 신체적 차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친 누나의 권유로 비올라를 시작하면서 음악이 삶의 돌파구가 됐다. 하지만왼손이 오른손보다 짧아 힘을 주기 어려웠기에 남들보다 서너 배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존재감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4학년이 되면서 연주자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이 길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후 악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로 떠나 악기 제작을 배우며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곳에서 손가락 네 개로 악기를 만드는 막시모 선생님을 만나며 큰 자극을 받았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가진 사람도 악기를 만들고 있는데 내가 왜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유학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였다.
크레모나에서는 7년 동안 공부했다. 수학, 물리, 음향학, 화성학 등 14개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노력 끝에 마에스트로 디플로마를 받을 수 있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제작과 수리까지 모두 배우며 20대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지금도 외국에서 주문 제작이 이어지고 있고, 코로나 시기에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수요가 많았다"
"비노클래식은 현악기 제작·수리·전시와 연주 공간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이탈리아 크레모나 전통 방식으로 현악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지난 10여 년간 지역 연주자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다양한 공연을 이어오는 등 지역 문화예술에 기여해왔다. 이러한 활동으로 대전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 학생 대상 체험학습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비노클래식은 교육기부 진로체험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학생들에게 현악기 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악기의 역사와 구조, 보관 방법을 배우고, 제작 공정을 직접 경험하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또 작은 음악회를 통해 현악기의 음색 차이를 느끼고, 전문 연주자의 연주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고가 악기도 직접 연주해보며 음악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장애인 고용을 위한 사업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비노스트링을 설립해 장애인들에게 현악기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고급 기술을 습득해 자아를 성숙시키고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건강한 수제 현악기를 대중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공장제 악기의 유해성 문제를 고려할 때, 수제 악기 보급은 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나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과 사회, 지역과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문화예술의 평등을 이루고, 소외계층과 차상위계층에 희망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고, 내 악기와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받은 사명이라 생각한다"
조사무엘 기자 samue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