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꽃시단] 윤기 나는 머리
김경년(1940~ )
2025-08-26 충청투데이
윤기나는 긴 머리
생동감 넘치는 근육
단력있는 파부
미끈한 팔다리 근육
시선을 모으는 뒷모습
사슴같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나는 저걸 부러워해야 할까
아, 아니다
무엇을 부러워하랴
지금이 가장
행복한 걸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나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 있고. 대상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 있겠다. 우리는 때로 대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성찰에 이른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다 보면 그 사이에서는 늘 같은 보폭으로 시간을 겪기 때문에 나이 듦을 모를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공원에 가서 윤기 나는 긴 머리 휘날리며 달려가는 젊음을 보면 언제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던가, 하고 지난 시간을 되새겨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왼 손에는 손자를 잡고 있지 않은가. 아장아장 따라오는 나의 우주 전체인 손자의 눈망울. 그 기쁨을.
누군가 오늘을 어제 죽은 그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내일이었다, 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어제의 내일 위에 있는 셈. 그 순간도 이제 곧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 언제나 미래 위에 서서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시인도 ‘지금이 가장 행복한 걸’이라고 말하거니와. 우리는 거대한 시간의 강물 안에서 한 흐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간은 나에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품고 그 흐름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김완하(시인. 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