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꽃시단] 뜨개질을 하며

손영미

2025-08-19     충청투데이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길을 짠다


그와 나 사이 켜켜이
엉켜버린 사연이라는 실타래

억측을 부리고 따져내려는 서릿발 언사와

너 때문에 나 때문에라고 들이대던 가시 돋친 손가락이
감아올린 실올 사이에서 지느러미처럼 미끄러져 꼬리를 감춘다

한 코 한 코 뚫고 오르느라 길을 잃은 날개가
다듬어진 옹이 무늬에 앉는다
카시미론 같은 이해심은 겉뜨기로
덜 절은 배추겉잎 같은 오기는 안뜨기로
사슬뜨기로 뜬 창살무늬는 코를 지운다

대바늘 두 개가 촘촘히 실타래를 끌어 올리는 동안
내 탓이야라고 비늘을 털며
밑실이 다 풀어졌다

따슨 스웨터 하나
그에게 걸쳐주니
그의 입에서 툭 떨어지는
함박꽃 하나


키만큼 벌어진다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뜨개질 한다는 것은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역발상일까. 우선 뜨개질이 연상하는 겨울에 몰두하며 여름 더위를 잊고. 선풍기 앞에서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으니 시원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뜨개질 마치고 스웨터 하나 선물할 사람 생각에 절로 흥이 날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그와 나 사이에 엉켜버린 사연의 실타래가 풀리기도 할 것이다. 한 코 한 코 짜여 실들이 이루어가는 성채를 보며 그간의 시간도 무의미한 것만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는 한편의 시가 짜이는 수고로 통할 것이다.

요즈음 같은 초고속 시대에 뜨개질로 실을 뜨는 일이 어리석다 말하지 마라. 급히 쌓은 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하는 법. 그러니 몇 날 며칠 걸려서라도 한 채의 따뜻한 집을 짓는 것이다. 게으름도 때로는 재산이 된다고. 어쩌면 스웨터가 다 짜이는 날 겨울이 막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 카시미론 같은 이해심은 겉뜨기로 하고. 덜 절은 배추겉잎 같은 오기는 안뜨기로 하고. 사슬뜨기로 뜬 창살무늬는 코를 지운다고 하니. 그 사이 대바늘 두 개가 촘촘히 실타래를 끌어 올리며 모든 건 다 내 탓이야 라고 그간에 쌓였던 원망도 풀어질 것이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