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80년 전 광복 함성처럼… 국내 최대 ‘태징’ 울렸다

김홍신문학관서 첫 타징 과거·현재 잇는 울림 눈길

2025-08-19     김흥준 기자
▲타징하는 김홍신 작가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18일, 태양이 정오의 정점을 찍던 순간, 묵직하고 장엄한 울림이 논산 하늘을 갈랐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김홍신문학관에 기증된 국내 최대 규모의 징, ‘태징’이 드디어 첫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 순간, 징 소리는 단순한 악기의 울림이 아니라, 해방의 기쁨과 역사적 감격, 그리고 문학과 삶을 잇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행사는 충남무용교육원의 흥겨운 길놀이로 문을 열었다. 사물놀이의 장단이 한껏 분위기를 달구자, 참석자들의 표정도 점점 환해졌다. 정오가 되자 모두의 시선은 문학관 앞 태징으로 쏠렸다. 첫 타징은 문학관 건축을 기증한 남상원 회장의 몫이었다. 이어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과 백성현 논산시장이 힘차게 징을 두드리며 울림을 더했고, 마지막은 소설가 김홍신이 장식했다. 징이 울릴 때마다 청중은 숨을 죽였다가 터져 나오는 공명의 파동에 박수를 보냈다.

태징은 직경 163c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징이다. 15년 전, 최애화 오벨리스크바이스타 회장이 제작을 의뢰해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지만, 그 진귀한 악기는 오랜 세월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김홍신문학관에서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다. “제가 힘들 때 징 소리를 들으며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 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기증자인 최 회장의 고백은 징이 가진 위로의 힘을 새삼 일깨웠다.

타징식 후 1부에서는 태평무와 국악무대가 이어지며 시민들에게 흥겨운 잔치를 선물했다. 2부 릴레이 시민강좌에서는 김동철 강사가 징의 역사와 상징성을 풀어내며 참석자들을 전통의 깊이 속으로 인도했다. 벽화와 악기 자료집까지 준비돼 시민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어진 ‘시 토크’에서는 김홍신 작가가 최근 펴낸 시집 ‘그냥 살자’를 중심으로 삶과 사랑, 문학의 의미를 풀어냈다. 21년 만에 내놓은 시집 속에는 사별한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었다. “‘인간시장’주인공은 결국 제 삶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라는 그의 고백은 시와 소설, 그리고 작가의 삶을 하나로 엮어냈다.

행사 마지막에는 사인회와 함께 시민들이 직접 태징을 두드려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커다란 징을 마주한 이들은 “가슴이 뻥 뚫린다”, “심장이 뛰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전용덕 문학관 대표는 “서울 보신각의 종소리에 논산은 징으로 화답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삶의 박동을 되찾고 싶을 때, 이곳 문학관에 오십시오. 태징이 가슴 떨리게 할 겁니다”라며 특별한 초대장을 건넸다.

광복의 함성처럼 울려 퍼진 태징의 첫 울림은, 과거의 기억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잇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날 논산 땅에 퍼진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닌, 자유와 생명, 그리고 문학이 함께 어우러진 역사적 진동이었다.

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