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늦여름의 소묘(素描)
김도환 문의구룡예술촌장
2025-08-07 충청투데이
8월은 가을로 이행하는 시기이다. 여름 물고추가 어느새 말라 껍질이 쪼그라들었다. 늦여름의 햇살과 바람 때문이다. 어느새 염천의 더위가 슬그머니 휘돌아 꽁무니를 뺀다.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는 말복의 알 빠짐이 잦아들어 이제는 튼실하게 매달려 있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은 혁명군의 깃발을 날리듯이 선들거린다.
태양에 기초한 24절기 중 8월 초에 입추(立秋), 하순에는 더위가 끝나는 처서(處暑) 절기가 있다. 8월 반절이 지나면 조석으로 바람이 선들하다. 식물들도 모두가 기운을 차리며 제 할 일을 한다. 동부콩은 울타리로 기어올라 알이 들어차 긴 깍지를 저울질하듯 춤을 춘다. 사랑 모양 잎 모양은 너울너울 나긋하게 승무로 이끈다. 화분에 심어놓은 꽃이 옹기종기 놓인 뜨락은 이내 무도장이 되고 말았다.
올해는 비 없는 장마와 폭염으로 언제쯤 가을이 오나 기다림 속에 여름은 익어간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루아침에 하늘이 높아진 것 같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청명한 대기의 상차림을 기대한다. 늦여름을 이대로 보내기에는 마음이 성차지 않다. 보양식을 찾고 기운을 차려 다가올 가을을 맞을 것이다.
길가에 핀 여름꽃은 열매를 맺어 알차다. 몇 해 전부터 꽃 씨앗을 받으려 했는데 실천하지 못하였다. 오늘은 작심하고 꽃에 빨간 끈을 매달아 놓았다. 네가 가을을 지나 열매를 맺으면 그때 너를 찾아 씨앗을 받으리라 마음을 굳혔다. 모두가 준비하는 가을맞이다.
문득 잊었던 친구에게, 옛 여인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늦여름의 끝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어떻게 살고 있나 묻고 싶다. 여름밤이 주는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의 심정이다. 밤안개가 내려앉은 벼 논에 귀뚜라미가 운다. 소식의 전령 같은 너의 소리가 정겹다.
보내는 사람도 식물도 못내 아쉬움이 묻어나고 평화가 샘물같이 솟는다. 슬금슬금 느릿하게 준비를 하고 바람결에 춤추며 맞는 늦여름이 지난다. 이제 원래의 자유를 찾고 휴식 할 수 있는 계절이 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름내 힘들었던 노동과 미웠던 천기에서 우롱만 당하고 말았던 민초들의 동반 휴식과 긴 시간을 읽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