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시인의 눈으로 본 AI 시대: 언어와 창조성의 경계에 서서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2025-08-06 충청투데이
인공지능(AI)은 예고 없이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언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 AI가 발을 디딘 것은 많은 이에게 경이로움과 더불어 묘한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AI는 이제 훌륭한 문장을 구사하고, 복잡한 정보를 요약하며, 심지어는 시(詩)까지 써 내려간다. 그러나 시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시는 시를 낳는 시인의 심미적 정서이며, 그 본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정서에서 비롯된다. 기존 지식을 조합하고 조작해 만들어지는 AI 시가 결코 인간의 시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진정한 시는 시를 낳기까지의 깊은 사유와 고뇌의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AI가 생성하는 언어는 분명 놀랍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분석해 언어 규칙을 정교하게 모방한다. 그들의 언어는 효율적이고, 논리적이며 때로는 매끄러워서 인간의 글과 구별하기 어려운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마치 천변만화하는 빛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그림자처럼, AI의 언어는 실체 없는 이미지임에도 실제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단순히 정보 전달이나 미적 형식을 넘어선 무언가를 품고 있다. 한 인간이 살아온 고통과 환희, 좌절과 깨달음이 시의 행간에 스며들고, 보이지 않는 사연들이 단어 하나하나에 깃든다.
논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울림과 공감,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진심이 있다. AI가 수많은 시를 학습하여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새벽녘 홀로 뒤척이는 번민, 잊힌 옛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혹은 한 생명을 대하는 경건한 태도와 같은 ‘삶의 경험’을 체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시는 결과보다는 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유의 즐거움에 더 큰 가치가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창조성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AI의 창조는 학습된 패턴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재조합에 가깝다. 그들은 없던 것을 갑자기 발견하거나 깊은 내면의 고뇌 끝에 혁신적인 통찰을 터뜨릴 수 없다. 그것은 영감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 즉 삶의 의미를 깊이 탐색하고, 자신을 초월하려는 인간 고유의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AI는 시를 분석할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던져주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시인의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 AI는 수많은 비유를 생성할 수 있지만, 한 시인이 겪었던 고독이 폭설처럼 쌓이는 비유를 창조할 수 없다.
결국 AI 시대는 시인의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시인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AI가 편리한 도구가 되어주는 동안, 우리는 더욱 깊이 내면으로 침잠하고, 인간만이 가능한 서정적 상상력과 형언할 수 없는 진실을 찾아 헤맬 것이다. AI가 데이터로 구축된 언어의 세계를 재건한다면, 시인은 여전히 그 세상 너머의 의미와 가치, 영혼의 속삭임을 탐색하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것이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시인이 걸어야 할, 그리고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