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교제살인’ 무게… 대전 흉기피습 사건이 드러낸 제도 빈틈
관계성 범죄탓 엄벌·보호 대신 피의자 자성에 기대 충청권 교제폭력 신고 1만건 육박… 4년새 91% ↑ 반의사불벌 한계로 검거율 15%·구속률 1% 불과
[충청투데이 김중곤 기자] 최근 대전에서 발생한 전 연인 대상 살인 사건은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보호 및 대처가 어려운 교제폭력의 실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라는 지적이다.
앞서 범죄의 예비 징후를 인지한 경찰의 스마트워치 착용 등 안전조치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 사망이라는 참극이 발생하면서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A씨가 24시간에 가까운 도주 끝에 이날 오전 11시 45분경 대전 중구의 한 지하차도에서 긴급체포됐다.
앞서 A씨는 전날 오후 12시8분경 대전 서구 괴정동 한 빌라 인근 거리에서 3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과거 연인 관계였는데, 이번 사건 발생 전까지 B씨가 A씨를 4차례나 경찰에 신고한 기록 등을 바탕으로 교제 살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를 재물손괴(지난해 11월 1일), B씨 폭행, 출동경찰관 협박 및 폭행(지난 6월 27일) 등 혐의로 입건했고 폭행 사건 직후엔 B씨에게 스마트워치 착용 등을 권했다.
하지만 B씨가 이를 거부하며 조치는 실행되지 못했고, 여기에 A씨에 대한 처벌불원서도 경찰에 제출하면서 폭행죄 처벌을 묻기 어려워졌다.
교제폭력에 주로 적용되는 형법상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다.
위험 징후에도 한때 가까운 연인 관계였던 피의자에게 기회를 주다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는, 교제폭력의 전형이 이번 사건에서도 재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전청 관계자는 “피의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2회에 걸쳐 스마트워치 등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권유했지만 피해자가 거부해 미실시됐고 이후 처벌불원서가 제출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교제폭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빈번해지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스토킹을 아우르는 관계성 범죄라는 특성 탓에 가해자 처벌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충청권 4개 시·도에서 접수된 교제폭력 112신고는 2020년 5186건에서 매년 늘며 지난해 9950건까지 4년 만에 무려 91.5% 폭증했다.
올해는 지난 1~5월 누적으로 대전 1488건, 충남 1452건, 충북 1253건, 세종 164건 등 도합 4357건 접수됐다.
반면 신고와 달리 충청권의 교제폭력 피의자 검거인원은 2020년 1321명에서 지난해 1558명으로 소폭 느는 데 그치며, 신고 대비 검거율은 같은기간 25.5%에서 15.7%로 10%p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맥락에서 교제폭력은 피의자 구속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충청권의 교제폭력 피의자의 구속 비율은 1.6%(25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관계성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경찰청은 29일 경찰청장 직무대행 주재로 전국 시·도청장, 경찰서장이 참여하는 지휘부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관계성 범죄의 주요 사례를 분석하고 기동순찰대는 접근금지 등 임시·잠정조치 피의자 주변의 순찰을 하는 등 추가적인 범행을 실질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중곤 기자 kgony@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