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물방울’로 빚은 와인… 술이 아니라 ‘사랑의 묘약’

[여명구의 FUN FUN한 스토리] 박천명 영동 오드린 와이너리 대표 직장생활 하다 아버지 권유로 귀농 포도왕 부친 뒤이어 포도농사 시작 어머니표 와인에 반해 만들자 결심 아카데미 등록·소믈리에 과정 이수 만족·성취감 커… 인생 최고의 행복 道 ‘중심에 서다’ 공동브랜딩 대상 청주국제공항 면세점 입점 등 성과 지역사회와 상생 유·무형 상품 고민 다음달 15일 K-와인 독립선언 준비 넘버 원 아닌 ‘온리 원’ 와인 만들 것

2025-07-20     김진로 기자
▲ 박천명(왼쪽) 대표와 여명구 사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박천명 대표가 와인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박천명 대표가 와인 제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충청투데이 김진로 기자]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여명구 충청투데이 대표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네 이웃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이들의 열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여 대표 특유의 친화력과 격의없는 화법으로 상대를 단숨에 무장해제 시키는 유쾌한 인터뷰를 연중 게재한다. <편집자 주>



‘와이너리’란 단어가 예전엔 무척 생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변에서 많이 사용하면서 그리 낯설지가 않다. 와이너리(winery)는 wine(와인)과 ery(장소)의 합성어다.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 막걸리 양조장이라면, 와이너리는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이너리에는 와인을 만드는 제조 설비뿐만 아니라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도 필수적이다. 와인의 보관기간이 위스키에 비해 짧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와이너리들이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와인을 즐기기까지는 제조부터 저장까지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포도의 고장 충북 영동군에서 3대째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이가 있다. 박천명(51) ‘오드린 와이너리’ 대표다. 이 와이너리는 지난 1974년 박 대표의 외조부가 일궜던 포도밭에서부터 시작됐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와이너리는 현재 지역 대표 와이너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와인과 사랑에 빠진 박 대표의 열정이 와인에 온전히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은은한 향기를 머금은 오드린의 와인이 충북도 ‘중심에 서다’ 공동브랜딩 대상으로 선정된 데 이어 청주국제공항 면세점에 입점하는 등 희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와인은 술이 아니라 사랑의 묘약이라고 말하는 그는 최고의 아내 사랑꾼이기도 하다. 박 대표를 만나 오드린 와이너리의 운영 방침과 와인에 대한 그의 철학 등을 들어봤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

박 대표의 사업장이 소재한 오드린 와이너리(영동군 소재)를 찾은 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오후였다. 오드린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것은 반달 모양의 조형물이었다. 이 반달 모양의 조형물은 실제 달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오드린(EAU DE LUNE)은 프랑스어로 ‘달의 물방울’이란 뜻이다. 이 조형물은 또 오드린에서 한 눈에 바라다보이는 월류봉에 걸린 반달을 옮겨 놓은 듯 조화로워 보였다.

오드린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 박 대표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았다. 더위를 피해 박 대표의 뒤를 따랐다. 그가 안내한 곳은 지하 와인 저장고였다. 저장고엔 와인을 담을 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또 다른 한 켠에는 와인을 품은 병들이 빼곡하게 진열된 채 이름 모를 주인에게 선택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와인 저장고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오드린 와이너리의 소개를 부탁했다.

박 대표는 1974년 외조부가 일구던 포도밭이 오드린까지 맥을 잇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지만 이곳은 단순히 와인만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고 소개했다.

박 대표는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오드린만의 차별화된 유·무형의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귀뜸했다.

그는 이어 "와이너리는 고품격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사명감과 함께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애정이 결합될 때 비로소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겠다는 뚝심의 표현으로 읽힌다. 또한 박 대표 자신만의 차별화된 와이너리 운영 철학을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된다.



◆청주공항 면세점 입점 등 성과

박 대표는 실제 ‘넘버 원’ 보다는 ‘온리 원’이란 자신만의 차별화된 와이너리 운영 철학을 10여년째 우직하게 고집해 왔다. 그 결과를 보상 받기라도 받듯 최근 들어 굵직한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청주국제공항 면세점에 공식 입점한데 이어 한국와인 부문 최고의 영예인 ‘베스트 오브 2025’에도 선정됐다.

먼저 지난 5월 오드린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 ‘월류봉’과 ‘그랑티그르 CE2002’, ‘그랑티그르 MBA2002’ 총 3종이 청주국제공항 면세점에 공식 입점하는데 성공했다.

오드린을 대표 와인인 ‘월류봉’은 캠벨얼리 품종을 사용한 레드와인이다.

‘그랑티그르’ 시리즈는 국내산 감을 원료로 사용한 와인이다.

박 대표는 "오드린의 대표 와인 3종이 면세점에 입점한 것은 영동의 청정자연과 오드린의 정성을 담은 와인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 받은 것"이라며 "특히 청주공항 면세점 입점은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오드린에서 생산한 와인 ‘월류봉‘이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한국와인 부문 최고의 영예인 ‘베스트 오브 2025’에 선정되는 낭보도 있었다.

박 대표는 "월류봉이 ‘베스트 오브 2025’에 선정된 것은 오드린의 와인이 고품질의 와인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며 "월류봉은 큰 일교차 속에서 자란 생포도의 신선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프리미엄 와인"이라고 소개했다.

오드린은 지난해 충북도의 새로운 CI와 BI인 ‘중심에 서다’와 공동브랜딩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충북도와 오드린이 공동브랜딩 협약을 체결한 배경은 충북도는 새 이미지를 오드린에서 생산된 와인에 홍보하고 오드린은 고품질 국산 와인을 국내에 알리기 위한 협력의 일환으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충북도와 공동브랜딩 협약을 맺게 된 것은 오드린이 고품질의 ‘온리 원’ 와인을 만들기 위해 지난 10여년간 연구하고 개발해 온 결과"라고 말했다.



◆와이너리 운영은 내 천직

박 대표도 처음부터 와이너리를 운영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2010년 부친의 권유로 영동으로 귀농한다. 서울에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나름 성취감도 있었다. 하지만 뭔지 모를 공허함에 그는 과감히 귀농을 결심했다.

귀농한 그가 선택한 것은 포도 농사였다. 영동군에서 포도왕으로 더 잘 알려진 부친인 박삼수 2대 대표의 뒤를 이어 포도 농사에 뛰어 들었다.

박 대표는 부친에 대해 "포도농사에 종사하던 아버님은 2005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이듬해인 2006년엔 영동군 포도왕에 올랐다"며 "한 평생을 포도농사에 종사한 부친은 지역 경제활성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1년엔 영동군민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포도농사에 종사하던 박 대표가 와인에 눈을 돌린 것은 어머니가 만든 와인을 맛 보고 나서다.

그는 "귀농 후 어머니가 만든 와인 맛을 본 뒤 와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2012년 와인아카데미에 등록, 초급부터 소믈리에 과정까지 이수하는데 총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와인을 만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는 2015년 본격적으로 와이너리 운영에 들어갔다.

박 대표는 "2015년부터 ‘원류원’ 이란 사업자명으로 와이너리를 운영했다"며 "2024년 1월부터 법인명을 ‘오드린’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10년째 와인을 만들고 있는 그는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느꼈던 공허함이 말끔하게 사라질 만큼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그는 "와인을 만드는 일은 서울에서 일할 때 느꼈던 만족감이나 성취감과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와인을 만드는 일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미소 지었다.

특히 10여년 전 어머니가 만든 와인을 맛 본 후 자신도 와인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결코 헛된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박 대표는 "10여년 전에 어머니가 만든 와인을 처음 맛 봤는데 ‘천상의 맛’이었다"면서 "이후 나도 이런 와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천국의 맛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와인 만들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와인 얘기에 한껏 들떠 있는 박 대표를 보면서 그의 천직은 와인 만드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화답하듯 박 대표도 "(저는) 와인 만드는 일이 천직인 것 같다"고 했다.



◆K-와인의 독립선언

박 대표가 고민하는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한 오드린만의 차별화된 유·무형의 상품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박 대표는 지난 5월 열린 ‘오드린 와이너리’ 문화행사를 예로 들었다.

이날 문화행사는 이언희 화가의 서양화 작품 10여점이 전시됐다. 또 정정미 판소리 명창과 박은채·김하은·이소정 등 국악인들이 품격있는 무대를 선 보였다.

이언희 화가는 ‘2024대한민국 청춘미술대전 청춘 작가상’을 수상한 실력파 화가이자 박 대표의 부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박 대표가 와이너리 저장고 한 켠에 부인의 미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든 사랑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오는 8월 15일엔 깜짝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K-와인의 독립을 선언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광복절을 맞아 오드린 와이너리에서 가든파티와 음악회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 자리에서 K-와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K-와인의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예고했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인 와인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지역 상생 방안까지 고민하는 박 대표를 보면서 귀농인들이 지역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해법을 박 대표가 제시하는 건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김진로 기자 kjr6040@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