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칼럼] 케인즈의 힘, 하이에크가 그리운 이유

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2025-07-20     충청투데이

노먼 맥클레인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은 삶의 상실과 사랑을 강물에 비유한 명작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중심에는 강이 흐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의 흐름을 돌아보면 이 ‘하나로 합쳐지는 강물’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정부의 자금, 사람들의 기대, 자산의 가치까지 모두가 하나의 방향으로 쏠렸다. 그 끝은 한강이고, 아파트였다. 더는 주거지가 아니라, 신흥 중산층의 상징이자 경제활동의 종착지였다. 이는 단순한 시장 현상이 아닌, 분명한 정책 철학의 산물이다.

그 중심에는 ‘케인즈의 힘’이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불황기에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은 위기마다 이 철학을 충실히 실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개입은 응급처방이 아닌 시장의 흐름을 결정짓는 구조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정부가 정한 ‘재정이라는 물길’에 올라타기 위해 움직인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아파트를 사고, 서학개미가 되며, 기업은 정부 과제에서 생존을 모색한다. 청년과 서민은 기회를 잃고 창의성과 자율성은 점점 메말라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시장 질서를 인간이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만들어내는 자생적 질서라고 봤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가격 신호를 왜곡시키고, 실험과 실패의 기회를 차단하며, 결국 시장의 진화를 멈춘다고 경고했다. 앞서 맥클레인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는 강’이라면,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코엘료는 짧은 단상과 산문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각자의 방식과 길을 이야기한다. 어떤 이의 강물은 빠르게 흐르고, 바위에 부딪히며 돌아가고, 또 누구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모두가 같은 강으로 흘러들지 않아도 된다. 이 자유롭고 다채로운 흐름이야말로 하이에크가 말한 진정한 시장 질서에 가깝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정부는 더 이상 ‘강물의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물길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동산이 아닌 산업과 기술, 기댐이 아닌 도전, 보조가 아닌 창업을 통해 각자의 경제활동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름은 케인즈가 아니라 하이에크다. 그리고 그 강물은 더 이상 한강만이 아니라, 금강이고 낙동강이어야 하며, 전국 곳곳의 냇물과 개인의 선택이 어우러진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