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논산경찰서장의 순국경찰관 추도사의 의미
김흥준 충남 논산·계룡 담당 국장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1950년 7월 18일 새벽, 충남 강경은 짙은 안개 속에 붉게 물들었다. 포화가 거리를 가르고,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숨죽였지만, 강경경찰(現논산경찰)은 침묵 대신 결단을 택했다. 두 차례에 걸친 회담 끝에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83인의 경찰관이 조국의 이름으로 산화했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75년이 지난 2025년 7월 17일, 논산시 등화동 경찰관 합동묘역에서 열린 추도식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유동하 논산경찰서장이 낭독한 추도사는 단순한 형식적 애도가 아닌,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자 물음이었다.
유 서장은 추도사에서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새벽 3시 포위, 4시 기관총 사격, 그리고 오전 11시, 탄환이 떨어진 절망 속에서 내려진 눈물의 후퇴 명령. 하지만 후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적의 기습 속에 83인의 경찰관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죽음보다도 더 강한 신념이, 그들의 마지막을 지배하고 있었다.
추도사에서 강조된 두 가지는 그날의 교훈이자 오늘의 과제다. 첫째, 우리는 적의 소련제 기관총에 맞설 무기조차 없었다. 이는 전쟁의 잔혹함뿐 아니라, 국가 안보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 서장은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위엄이 있다”는 말을 인용하며, ‘준비된 안보’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강한 방어력이 곧 평화를 지킨다는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둘째는, 항복하지 않았던 경찰관들의 ‘불굴의 신념’이다. 총보다 신념이 강했다. 죽음이 앞에 있었음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는 단지 제도나 선언이 아닌, 목숨을 건 선택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강경경찰의 유산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이다.
올해 등화동 경찰관 합동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된 것은 단순한 행정적 승격이 아니다. 이는 “국가가 이들을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약속이며, “이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증언이다. 유 서장은 추도사 말미에 “이 묘역이 국가의 품에서 관리된다는 것은, 이분들의 헌신이 영원히 기억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 속에는 지난 세월을 버텨온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와, 더 이상 이 희생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오늘의 평화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디딘 이 땅은 이름 없는 이들의 피 위에 세워진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강경경찰의 결단과 헌신을.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지금도 경찰은 국민의 일상 곁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때로는 박수를 받지 못하고, 때로는 오해와 비판 속에 서 있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그들의 헌신이 강경경찰의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유동하 서장의 추도사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선언문이다. 그 숭고한 정신을 지켜가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다.
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