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시대, 효도란 무엇인가?
[효문화신문]
한때 효(孝)는 자식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의 말씀이 곧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따로 사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녀를 낳지 않는 이들도 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 고령화, 비혼과 비출산 추세는 기존의 ‘효도’ 개념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지금 이 시대에, 효도란 무엇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4%를 차지한다. 특히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 노년층 1인 가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핵가족을 넘어 ‘개인가족’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효도를 단순히 부모님과 함께 살며 봉양하는 개념으로 보기에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다. 현실적인 여건도 다르고, 각자의 삶의 방식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효도가 물리적인 봉양 중심이었다면, 현대의 효도는 ‘존중’과 ‘관심’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함께 살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부모님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중요한 효도의 방식이 되었다. 부모님의 건강과 안위를 살피며 필요한 지원을 적절히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말하자면, ‘부모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대의 효다.
특히,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부모세대의 외로움은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자녀가 가까이 있지 않고, 이웃과의 교류도 줄어든 노년층은 고립감과 우울감을 겪기 쉽다. 이때 효도는 자주 찾아뵙는 것만이 아니라, 외로움을 덜어주는 정서적 연결이 된다. 짧은 전화 한 통, 정기적인 영상통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안부를 묻는 메시지 하나가 부모님에겐 큰 힘이 된다.
또한 ‘효도는 반드시 자녀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변화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노년을 돌보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커뮤니티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AI 기술을 활용한 사회적 효도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이는 효가 더 이상 가족 안에서만 머물 수 없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제 효도는 개인의 도덕적 의무를 넘어, 사회적 책임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한편, 자신이 1인 가구로 살아가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부모님 곁에 있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꼭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다.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부모님을 잊지 않고 챙기려는 노력이 진정한 효도의 출발점이다.
결국, 효도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처럼 한 집에 모여 사는 효는 드물어졌지만, 그 대신 마음의 연결, 관심의 표현, 정서적 소통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효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덕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다. 누군가의 걱정 속에 성장했고, 누군가의 손길 안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효도는 그 손길을 기억하고, 다시 되돌려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단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
지금 당신이 보내는 작은 관심 하나가, 누군가에겐 가장 큰 효도일 수 있다.
<신현지 명예기자>
[이달의 칭찬대상자]
이름 및 소속 : 이동헌 (대전경찰청 경정)
추천자 : 민인근 (유성남부노인복지관 일어강사)
이동헌 님은 대전경찰청 불자회장으로서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계시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웃을 위한 봉사와 조직 내 직원간의 화합 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특히 유성구 구암사(주지 북천 스님)와 함께 대전현충원에서 국수 봉사를 11년째 꾸준히 실천하는 모습은 민중의 지팡이로서 귀감이 되기에 진심으로 칭찬합니다.
오뚝이 아버지
내 이웃의 오뚝이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세월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검게 탄 실의도, 굶주림도 감싸 안으며 이겨온 세월이었습니다. 소 젖통 두들겨 끼니를 해결한다는 건 꿈 같은 얘기였습니다.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직 가족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뒤에는 한 여자와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나 깨나 가족 생각뿐이었습니다.
4형제를 떡으로 키웠습니다.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다음날 나갈 떡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지새운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셀 수 없는 밤을 보내면서 당신의 몸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젊었기 때문에 잘 몰랐지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서기를 했습니다.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보내준 곳이 보육원이었습니다. 그게 남들은 한창 배움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열 살 때였습니다.
17살이 되어 원 생활을 마감하고 어느 떡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떡에 대한 공부를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돌아가는 기계에 몸을 부딪쳐 상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손가락은 마디마디 옹이가 생겼습니다. 손바닥은 꺼끌꺼끌해졌습니다. 겨우겨우 얼마간의 자금을 마련한 후 조그만 떡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간 결혼도 하고 4형제를 낳았습니다. 하는 일이 힘겨운 일이라서 4형제를 키우면서 관절 수술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간 7번의 무릎 수술을 했습니다. 이제는 검버섯이 껌처럼 얼굴 전체에 눌러 붙었습니다. 다치고도 병원에 못 가는 당신이었습니다. 그간 1억이란 빚이 있었지만 이제 오백 정도만 남았습니다. 이쯤에서 이순을 붙잡아 놓고 등불 하나 켭니다. 어제 큰아들은 당신의 등을 밀다가 노트에 잘못 쓰인 글씨처럼 지워지는 때를 보았습니다. 아들의 손에 닿는 거친 이순의 당신, 당신의 향기를 담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당신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1억, 10억을 떡값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문희봉 명예기자>
타인에 대한 예절 고민
부모 자식 관계를 오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여, 맹자와 공자의 뜻을 확대하여 효를 모든 덕목의 기초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 자식 관계뿐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 이웃과 웃어른에 대한 예절, 나 자신의 건강을 잘 지키는 것도 효를 실천하는 범주 안에 속한다고 한다.
유치원 시절, 어디를 가든지 천 원짜리 용돈을 받을 정도로 나는 배꼽 인사를 너무나 잘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시는 엄마를 보고 따라 한 것 같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예절 교육을 배워서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마트, 약국, 병원, 공공기관 등 여러 곳에 다니게 되면서 나는 인사하기가 쑥스럽고 부담스럽게 느껴져 잘 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협소한 공간인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인사를 하지 않으면 엄마께서 "너는 왜 그러냐?, 인사를 바르게 해야지"라고 말씀하셔서 화가 나기도 했고 심지어 여느 때는 엄마랑 말다툼까지 했다.
그냥 인사하기 싫은데 어른들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며칠 전, 내가 학원 엘리베이터 앞에 있을 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인사를 할까 하다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나를 보시고 "잘 생겼네! 공부하기 힘들지" 라고 덕담해주시며 인자하게 웃으셨다.
학원에서 너무 힘들었는데 난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렇다. 우리의 진짜 할머니가 아니어도 어른들은 우리를 좋은 마음으로 항상 바라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어디에서든 웃어른을 만난 때 인사하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효는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타인에 대한 예절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조우성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