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감꽃 떨어질 때

김도환 문의구룡예술촌장

2025-06-12     충청투데이

노란 감꽃이 지고 난 푸른 유월에 애기 감꼭지가 떨어진다. 꽃잎과 받침으로 감싼 아기감이 초록의 사각 왕관을 닮았다. 자정(自淨)의 낙과(落果)인게다. 뻐꾸기 울고 가뭄의 시절에 유독 떨어짐이 애처럽다. 초여름의 기운으로 무수히 널린 감꽃이 팝콘처럼 쌓였다.

대청호로 수몰된 내 고향의 우리집은 감나무집으로 통했다. 세기를 넘어선 수령의 크나큰 감나무로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고 초겨울까지 계절별로 우리들에게 이로움을 주었다. 특히 감꽃과 목걸이, 감잎차와 홍시의 기억은 유년 시절의 재미와 행복이었다. 46년 전 아버지는 전에 살던 집이 그리워 이주(移駐)한 해에 감나무를 심으셨다.

어느덧 세월의 흐름으로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아들이 떨어진 감꼭지를 빗자루로 쓸고 있다. 유월의 아침이면 밤새 떨어진 감꼭지를 빗자루로 쓰는 일도 소일의 재미로 다가왔다. 녹색의 아기감과 꼭지가 널린 공간이 깨끗한 마당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마음의 정리가 된듯하다. 불가의 구도(求道) 같은 느낌이다. 그 마음은 꾸밈없는 아이들의 순수함 같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감나무의 감꽃은 너무 많이 꽃으로 피었다가 스스로 떨어져 대지로 흡수되어 간다. 이는 나무와 자연의 섭리가 맞아 떨어져 동화된 합일의 행태로 보여진다. 여타의 과일은 꽃 전부가 열매로 되어 볼품없는 작은 과일로 성장한다. 그러나 감은 제 스스로를 알고 낙과의 길을 걷는다. 이 아름다운 순환의 과정은 나에게 작은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감나무가 주는 유익함은 너그럽다. 가을의 풍요까지 가는 과정에서 자락(自落)의 길을 걷고 홀로 산화하여 자연으로 귀화(歸化)하는 6월의 감꽃. 우리의 삶이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나도 세대를 맞는 탓이기도 하다. 감 한 꼭지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순수한 감성이 밀려온다.

감꽃이 ‘툭’하고 몸을 던지는 소리로 말할 때 튼실한 열매로 맺을 새빨간 가을의 감을 응원하는 신호로 보인다. 노랗게 핀 왕관의 모습 같았던 감꽃의 아름다움에서 물러설 때임을 아는 생명체 같다. 내 추억 속 감꽃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유년의 기억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세포이다. 그러나 언젠가 기억에서 멀어지는 날 미련없이 낙하하는 감꽃으로 변할 것이다.

수몰된 고향의 호수 안에는 베지 않고 떠난 시절의 먹감나무가 있을지 의문이다. 고향을 담은 아버지의 감나무는 큰 키로 자라 아기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재잘거리는 이야기 속에서 자라고 있다. 먼저 떨어진 인연을 생각하며 청홍의 실로 매듭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