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사회의 그늘 :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
정미경 꽃동네대 사회복지상담심리학과 교수
2025-03-09 충청투데이
오늘날 우리는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전통적인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유대는 점점 더 약화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즉, 혈연, 가족, 지역사회라는 1차적 관계가 인간의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 주던 사회가 점차 축소되는 대신, 특정 목적이나 취미, 이익 등을 중심으로 한 2차적 관계가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무연사회(無緣社會)다.
무연사회란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심리적·정신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특징으로 한다. 사람들 간의 교류, 대화, 그리고 연(緣)이 점차 엷어지며, 결국에는 소멸되는 사회를 뜻한다.
과거 가족과 혈연, 지역사회 내의 관계는 서로를 부양하고 위로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바쁜 현대생활과 소수의 형제자매, 그리고 이혼과 같은 가족 해체 현상은 이러한 1차적 유대감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인은 고립과 소외, 그리고 노후의 무연고자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된다.
지난해 9월 경기 김포시 다세대 주택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부패한 시신을 발견하였다. 사망자는 혼자 살던 60대 남성으로 원룸형태의 집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최근 가족들과도 연락이 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발표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한 해 평균 3500여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연사회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첫째, 경제적 보장과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빈곤과 고립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경제적 안정이 인간관계 회복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둘째 가족관계의 회복이다. 가족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교육적, 사회적, 지역적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지역사회 네트워크 활성화와 상담·지원 시스템의 확충도 요구된다. 지역사회 내부의 소통을 증진시키고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즉각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개인의 불안과 우울, 소외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담센터와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한 방안이다.
무연사회는 현대인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문제다.
이와 같은 고립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인간관계를 넓히는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고도산업사회에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 개인이 막다른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돌보고, 체계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연(緣)을 회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