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맞는 커피
김홍렬 청주대·한국음식인문학연구원장
조사차 찾아간 농촌 마을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농사짓던 인부들이 새참으로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배달시켜 빵과 함께 먹는 것이었다.
막걸리에 부침이나 국수, 떡이나 쌈밥 으로 노동의 허기를 달래던 전통적인 농업문화인 새참의 메뉴가 어느새 서양에서 건너온 커피와 빵으로 바뀐 것이다.
다방이라는 커피집 문화가 번성했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커피를 일상으로 마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더구나 농촌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어느새 커피는 우리의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 음료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쓰고 맛도 없다고 싫어하시던 어머니는 한 번 두 번 커피를 마신 후 그 맛에 익숙해지셨다. 나아가 당신 입맛에 맞는 나름의 커피 레시피까지 개발하셨고 때로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불러 크게 생색내며 한 잔씩 돌리기도 하셨다.
어머니의 커피 레시피는 한 스푼 반의 커피와 두 스푼의 크리머 그리고 설탕을 넉넉하게 두 스푼 반을 넣어 저어 주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커피 맛을 즐기기보다는 그저 달달하고 고소하고 약간은 한약처럼 쌉싸름한 맛이 나던 어머니표 커피는 시골 촌 동네에서 유일하게 커피라는 고급문화를 누리는 여성이라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때로는 내게 커피를 타 주기를 원하셨는데 그때마다 "커피 간을 잘 맞춰야 한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비법 레시피를 큰 소리로 불러 주셨다.
나는 나름대로 커피의 양을 늘리거나 프림의 양을 줄여보기도 하고 설탕을 좀 더 넣기도 하면서 어머니의 평가를 살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탄 커피의 간이 잘 맞는다며 믿고 맡기기 시작했다.
누님이 가져다준 커피가 떨어진 뒤에는 읍내 큰 슈퍼에서 똑같은 커피를 사 오셨고 우리 집에서 어머니에게 커피를 대접받는 사람은 점차 늘어갔다.
세계에서 1인당 커피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라는 대한민국에서 작금의 커피는 설탕과 크리머를 넣지 않은 원두커피에 아메리카노가 대세이지만 나는 때로 간이 잘 맞았던 어머니의 커피 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