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적 가을의 정취

백춘희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2024-10-21     충청투데이

필자가 좋아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의 진화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다.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울 만큼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은 봐야하는 책이다.

사피엔스에는 농업혁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수렵채집인으로 살던 인류는 농경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고 한다.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해야 하고, 더 많은 자녀를 낳아야 했다. 인구증가는 지배자와 엘리트를 출연시켰고, 잉여 재산들로 인해 전쟁이 생겨났다. 결론적으로 농업혁명으로 인해 수렵채집시대보다 열악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우리 삶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손편지는 e메일로 대체됐고, 빨래는 세탁기가 건조까지 해주며, 20분이면 따뜻한 밥을 지을 수 있다.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대신하며, 자동차는 자율주행까지 가능해졌다. 가사일이 줄어들고, 시공간의 격차를 줄였다. 과연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가족들이 모여도 각자의 휴대전화에 빠져 대화가 줄었고, 자동차로 인해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줄며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신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카드사의 노예가 되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문화예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창의적이고 추상적인 부분까지 창조해 내기 시작했다. AI는 작사, 작곡은 물론 미술품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모든 영역을 AI에게 내 준다고 하더라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 지역에서 개최되는 축제일 것이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대전 0시축제, 빵축제, 대전·세종·충청 푸드페스타, 그리고 지역 곳곳에서 펼쳐지는 마을축제와 행사들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야만 진행될 수 있다. 가족, 주민, 시민들이 주체가 돼야 하기에 아날로그적 행사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문화재단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2일 금난새와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19일 정경과 장혜진의 무대 등을 통해 완연한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 26일 진행될 ‘시민과 함께하는 민관군 화합페스티벌’은 포멘의 이한빈, ‘너였다면’의 정승환 등 평소 볼 수 없었던 군악병의 공연, 댄스동아리 팀의 경연대회, 시민들이 참여하는 골든벨, 포지션과 스페이스A 등 정상급 가수들의 무대 등 민관군이 화합해 축제를 개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 할 수 있다.

대전광역시는 광역자치단체 브랜드 평판 4개월 연속 전국 1위 기록하고 있다. 시는 평판지수 연속 1위의 주요 요인으로 지역문화 축제를 활용한 도시 브랜딩을 꼽았다. 지역 특성을 살린 다양한 행사들에 참여해 아날로그적 만남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 연인, 지인들과 잠시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