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모두가 ‘마을 파수꾼’ 스위스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
[지역 대표신문 4개사 공동기획] 新 자치분권, 미래를 보다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 주민 2000명 남짓 지역 주민 마을 현안 해결 자발적으로 참여 식수 문제 깊숙이 개입… 원활한 운영 나서 스위스 소방시스템 대다수 의용소방대 중심 모든 주민등록대상자 소방활동 의무복무해야 의무복무 부담금 납무하면 복무 면제되기도
자치분권 선진국가인 스위스는 주민 중심의 마을 공동체 운영을 통해 지역현안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전 세계 최고의 낙농업 국가인 스위스는 수자원 관리·운영에 있어서도 주민들에게 자율성·책임성을 부여했다.
특히, 소방사무는 게마인데(기초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자치사무로 규정됨에 따라 지역주민들이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에 의무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자치분권의 핵심인 ‘자기결정권’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자치시도에서 新자치분권 미래를 보다’를 주제로 국내 첫 기획취재를 진행하고 있는 공동취재단(강원도민일보·제민일보·충청투데이·전북도민일보)은 지난 9월 4일, 스위스 투르가우주에 속한 자치구역인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를 현지 취재했다.
◆주민 책임제로 관리·운영되는 마을 식수
스위스 투르가우주 내 보통지방자치단체인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는 두 자치단체인 하우프트빌과 고트하우스가 1996년 행정통합을 통해 하나의 자치구역으로 재탄생한 지역이다.
인구는 2000명 남짓이다. 이곳 주민들은 지역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식수 시설을 관리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점.
고트하우스 마을의 식수 시설은 주정부와 기초지자체가 관리하는 행정서비스가 아닌 주민 중심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민들이 식수 시설의 관리자이자 책임자, 그리고 수혜자였다.
주민들 스스로 지역 주요현안인 식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자율성과 책임성 체제로 원활한 운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공동취재단은 지난 9월 4일 오후, 고트하우스의 산 중턱에 있는 식수 시설을 찾았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정비된 식수 시설을 통해 각 마을로 식수 공급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마을 식수 시설 책임자인 미하엘 나터 씨는 "마을 곳곳에 있는 3개의 주요 우물에서 주민들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며 "물을 끌어올려 이곳에서 정수를 거쳐 각 가정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3년 째 식수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미하엘 나터 씨는 고트하우스 주민자치기구에서 환경·하수·쓰레기처리 분야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보일러 공장을 운영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기술적 지식을 마을 식수 관리에 접목하며 식수 시설을 총괄하고 있다. 청정 수질 유지는 물론 각 마을로 공급되는 식수량과 불순물 제거 등 모든 현안을 챙기고 있다. 사실상 무보수 명예직이다.
그는 "수도시설은 단순한 생활용수 공급이 아니다. 마을의 생명줄이기 때문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마을 전체가 이 시스템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취재단은 미하엘 나터 씨에게 ‘악천후나 몸이 아플때 마을 식수관리 작업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식수 관리는 우리 마을의 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트하우스는 농업과 임업 등 1차 산업이 중심이다.
그는 "주정부에서 교체해줘야 하는 오래된 우물도 있다"고 설명한 뒤 "식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운영과 관리는 주정부에 앞서 우리가 해야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킨다
"우리 지역 주민 모두가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스위스 지방분권의 또 다른 한 축은 게마인데(기초지방자치단체)가 자치사무로 소방 활동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단연, 그 중심은 주민이다.
스위스 소방시스템은 큰 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의용소방대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독일, 오스트리아도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소방 업무를 자치사무로 수행한다. 그러나 스위스 소방은 대부분 밀리츠시스템(Milizsystem)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된다는 점에서 자원(自願)에 의해 조직 및 운영되는 독일, 오스트리아와는 차별화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위스 남녀 20~51세까지 모든 주민등록자가 소방활동 대상자로, 의무복무 기간은 25년이다. 다만, 특별과세 성격의 의무복무 부담금을 납부하면 복무가 면제된다. 스위스의 직업소방관은 예외적으로 대도시에만 있다. 우리나라의 소방사무는 광역지방자치단체인 시·도가 자치사무로 수행하고, 소방관은 국가공무원이자 직업공무원이어서 소방 부문을 자치분권 테두리에 포함시킬 수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스위스 소방 분야가 지방분권의 한 축이 된 이유는, 칸톤의 입법사항이기 때문이다.
칸톤이 소방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스위스 소방의 책임기관이 게마인데이기 때문에 스위스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소방 활동은 주민 밀착적으로 진행된다.
반면 연방은 소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권이 없기에 행정권 역시 없다.
고트하우스 주민인 프랑시스칸 샬퍼 씨는 "우리 마을은 외부 도움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마을을 지키고 재난 상황에 대비한다. 이것이 스위스의 질서이기도 하다"며 "주민들은 소방대 활동이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 일원으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을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간 커뮤니티가 형성됐고,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마스 알렌스파흐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 자치단체장 "스스로 재원 마련할 수 있는 시스템 갖춰야"
토마스 알렌스파흐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 자치단체장은 "자치단체가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4개 특별자치시도에 접목할 모델로 ‘완전한 자치분권이 이뤄지는 연방제’도입을 추천했다.
공동취재단은 지난 9월 4일 오후,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 청사에서 토마스 알렌스파흐 자치단체장을 인터뷰했다.
싱가포르 등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다 부친의 고향인 하우프트빌로 돌아와 자치단체장이 된 그는 "스위스는 유럽 내에서도 좋은 심장을 갖고 있는 나라다. 아주 튼튼한 사회적 인식과 인프라가 있기에 스위스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 마을 역시 내외국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1문 1답]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사무 기능 및 자치단체 운영 핵심 현안은.
"도로나 급수, 쓰레기·하수처리 같은 SOC(사회간접자본)와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다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총회를 통한 투명한 세율 결정 과정이다. 이것이 자치단체 운영의 핵심이다. 주민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복지와 조세 부문이다. 세율은 자치단체 총회에서 결정하는데, 세율을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선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 집행기관은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안건을 집행한다. 조세 역시 주민 투표 안건의 중요 의제다."
-자치단체 총회는 어떻게 진행되나.
"1년에 2번 열린다. 예산·결산 총회로 이뤄진다. 예산 총회에서는 다음 회계 예산 전체를 논의하고, 자치단체장의 임금도 결정한다. 결산 총회에선 지난해 사용 예산에 대한 회계 감사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주민들이 승인해야 절차가 진행된다. 마을의 큰 프로젝트들도 총회에서 결정된다. 모든 과정들을 자치단체 홈페이지에 상세히 공개한다."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의 재정 자립도와 부채 비율은.
"우리 지역은 조세를 거두기 위한 2차 산업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다. 때문에 재정자립도를 높여 다른 부문에 투자해야한다. 우리 지역의 큰 수익은 세금 외에 수도 시설과 전력 시설 등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주민들과 집행위원들이 수시로 논의하고 있다."
-4개 특별자치시도에 대한 조언은.
"지방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스스로 재원 마련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우리 지역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부족한 세금을 충당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마련하고 있다. 완전한 자치분권이 이뤄지는 연방제 도입을 추천한다. 그래야 지방 정부가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해진다. 한국 사회가 좀 경직된 것 같다. 주민들을 융합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안네트 하임 교육·문화·체육 분야 집행위원 "지역 자치 경험… 빠르게 현안 해결 가능"
◆지역자치 경험으로 정치권 진출
"지역 현장에서 일한 사람만이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의회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우프트빌-고트하우스 주민자치기구에서 5년 째 활동 중인 안네트 하임 교육·문화·체육 분야 집행위원은 주민 중심의 스위스 자치분권 체제가 유지되는 배경을 이 같이 꼽았다. 그는 마을 축제 담당 및 도서관을 공동으로 운영하며 주민단체가 원하는 현안을 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네트 하임 집행위원은 "자치단체의 업무는 지역사회, 지역주민과의 협력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주민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4명의 자녀를 둔 안네트 하임 위원은 지역자치 활동을 토대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주의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지역주민들과 오랜 시간 유대 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충청투데이 함성곤·강원도민일보 박지은·전북도민일보 김슬기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