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문화의 노인 공경과 돌봄의 효

효문화신문

2024-09-26     충청투데이
▲ 육군대학교 수탁장교(육군 소령) 조하니(AL JOHANI AHMED MUSHAHHIN M)

아랍 문화의 노인 공경과 돌봄의 효

아랍 및 이슬람 문화권과 한국 사회는 노인에 대한 공경과 돌봄 정신에 기반을 둔 효 가치관에서 유사한 점을 보입니다.

아랍 문화에서는 노인에 대한 존경이 필수적인 요소로,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노인들을 돌보고 도와주는 행동을 통해 그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에서 노인에게 우선권을 양보하거나 가정에있는 노인을 공경하고 돌보는 일은 아랍문화의 전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관습에서도 나타납니다. 한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윗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노인을 공경합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단순히 "안녕"이라는 인사의 의미를 넘어서 노인에 대한 예의를 나타내는 표현이며, 가벼운 인사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행동으로 존경심을 드러냅니다. 제가 한국에서 거주하며 이러한 모습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 가족 모임에서 노인을 위한 선물을 증정하는 모습 등 한국에서 노인 공경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아랍과 한국 사회 모두에서 노인을 존경하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통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랍 문화에서 가족 식사는 가족 간의 소통과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정성껏 준비된 음식을 함께 나누며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와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의 전통에서도 가족 식사는 가족 간의 소통과 유대감을 키우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저녁 식사는 가족 간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랍 사회에서의 종교 및 사회 행사에서도 노인에 대한 존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두 주요 명절인 라마단 종료 후의 ‘이드 알피트르’와 희생제인 ‘이드 알아드하’에는 노인을 찾아 뵙고 선물을 챙기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에서 노인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대가족이 모이는 전통과 유사합니다. 아울러, 부모에 대한 효와 돌봄은 두 문화에서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랍 사회에서는 부모가 나이가 들었을 때 그들을 돌보는 것이 종교적·도덕적 의무로 여겨집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부모와 함께 살며 그들을 돌보는 것은 자녀의 책임을 나타내는 오랜 전통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랍문화권과 한국은 노인에 대한 관심과 가족 및 사회 내에서 강한 유대감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노인에 대한 존경과 가족 식사, 명절을 통해 소통과 유대감을 강화하는 방식은 두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일상적인 행동과 전통적인 행사 속에서 깊은 존경심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육군대학교 수탁장교(육군 소령) 조하니(AL JOHANI AHMED MUSHAHHIN M)

▲ 도고면, 김익생(金益生) 정려(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 329번길 72-4)

[전국 효 문화유산 탐방] 도고면, 김익생(金益生) 정려(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 329번길 72-4)

효성에 감동하여 호랑이도 봉양을 도운 효자 김익생의 정려이다.

김익생의 본관은 김녕이고 호는 성재(省齋)이며, 박팽년의 외조부이다. 아버지 김질은 고려가 망하면서 도고면 도산리에서 절의를 지키며 여생을 보냈는데, 이때 김익생이 태어났다. 그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평생 양친을 지성으로 섬겼으며 또한 문무를 겸비한 충신으로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김익생이 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병을 얻어 전혀 먹고 마실 수 없었다. 잉어를 먹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엄동설한에 잉어를 찾아 나섰지만 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김익생의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 연못을 가르쳐주었다. 다음날 꿈속에서 본 연못에 가보니 갑자기 연못이 갈라지면서 잉어가 튀어나와 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 드렸더니 점차 병세가 호전되었다. 며칠 후 배를 드시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배를 찾고자 하였으나 한겨울에 배를 구할 길 없어, 이곳저곳 헤매다가 겨울밤 험한 산길을 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그를 업고 달려가 어느 절 앞에 내려놓았는데, 그곳의 나무 위 까치둥지에 배 한 개가 있어, 그것을 가져가 어머니께 봉양하였다. 김익생의 이러한 효행이 널리 알려져 1405년(태종 5)에 효자 정문을 받게 되었고, 김익생은 그 후 관직에 나아가서 중추부사, 경주부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정려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723년(경종 3) 큰비가 내린 후 개울가 모래에서 반 토막 난 효자비와 대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려 앞에는 1996년 세운 김익생의 신도비와 1992년 세운 10세손 김정국(金鼎國, 1747~1812)의 공덕비가 함께 있다.

출처: 한국효문화자료보감 내포지역편

 

[효툰] 꿈빛이와 떠나는 효문화 여행

칭찬·감사 실천 사례 ③

글·그림: 정하은

▲ [효툰]꿈빛이와 떠나는 효문화 여행 칭찬·감사 실천 사례 ③ 글·그림 : 정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