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대전연극제… 연극인, 꿈의 날개 펼치다

호연환생뎐, 레퍼토리 다양화… 지역인물 발굴 시도 조선시대 문인 김호연재 삶을 무대로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무엇으로 나는가,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위태로운 가족의 모습 통해 희망 고민 너무 놀라지 마라, 평범한 가정의 해체 극단적으로 그려내 희비극적 요소로 현실 아이러니 표현 하이옌, 강자에 의해 흐트러진 가족 삶 담아 현대사회 풍자… 사랑·이해 생각하길

2021-02-18     서유빈 기자
▲ 제30회 대전연극제 포스터. 대전연극협회 제공

[충청투데이 서유빈 기자] 지역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인 ‘대전연극제’가 올해 서른을 맞이했다. 대전 연극의 발전과 연극 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자타공인 프로극단들의 경연대회다. 2021년 개최되는 제39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할 대전의 대표팀을 선발하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2016년과 2018년, 대전지역이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지역 연극의 위상을 전국에 알린 바 있어 올해도 역시 기대감이 높다. 오는 22~28일까지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막이 오른다. <편집자주>

▲ 극단 새벽 '호연환생뎐'. 대전연극협회 제공

◆호연환생뎐(극단 새벽-22일 오후 4시·7시30분)

“김호연재가 죽은 지 300년을 앞둔 어느 날, 저승에서는 ‘염라 3·3·3 특례법’을 통해 김호연재를 천상에 추천해 환생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불의를 못 참고 꼿꼿한 성품의 호연재는 저승에서의 소외된 계층들을 돕느라 여러 차례 환생하기를 거부한다. 어느 날, 호연재가 박정순 할머니를 기초수급자에서 누락시킨 명부차사에게 항의하러 찾아온다. 명부차사는 본인의 업무에 사사건건 방해하는 호연재를 얼른 지상으로 올려 보내려고 여러 가지 묘안을 생각하려 하나 뾰족한 수가 없다. 염라국의 염라대왕 또한 본인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고 싶어 염라 3·3·3 특례법을 발현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는 와중에 저승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서투리가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통해 호연재가 환생할 수 있도록 설득하면 어쩌냐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본격적인 호연재 환생 프로젝트를 준비하기에 이른다. 과연 호연재는 환생을 할 수 있을까?”

극단 새벽의 ‘호연환생뎐’은 조선시대의 여성 문인 김호연재라는 역사적 인물을 저승세계와 환생 등 연극적 상상력을 가미해 관객들에게 친숙히 다가간다. 김호연재는 시대를 뛰어넘는 진취적인 여성이긴 하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대덕구에서는 호연재를 지역의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호연재가 지역을 알리는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전시민들에게 조차 낯선 부분이 많다.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접근해 호연재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 도한 연출의 의도이기도 하다. 김호연재라는 지역브랜드에 힘을 보태기 위해선 김호연재의 스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스토리가 없는 브랜드는 매력이 없다. 극단 새벽은 지난해부터 레퍼토리의 다양화를 시도했고 지역의 인물을 발굴해 대전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알리는 연극을 시리즈로 만드는 중이다. 신채호를 중심으로 한 연극 ‘곡하고 노래하리라’와 ‘천고’에 이어 이번에는 호연재의 삶을 보여주는 ‘호연환생뎐’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연극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지연인물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보여주고자 한다.

▲ 극단 빈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무엇으로 나는가'. 대전연극협회 제공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무엇으로 나는가(극단 빈들-24일 오후 4시·7시30분)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새벽. 오늘도 엄마 미천의 짜증난 고함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엄마가 모은 고물을 들고 들어오고 큰딸은 텐트에서 나와 씻으러 간다. 작은딸이 할머니의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엄마는 봉지커피를 타 마신다. 큰딸은 엄마에게 작은딸의 연극 오디션 소식을 전한다. 엄마는 작은딸에게 네 주제에 무슨 연극이냐며 작은딸을 적극 반대한다. 쪽방 쪽에서 종소리가 나자 작은딸은 할머니 아침을 챙겨 골방으로 간다. 작은딸이 할머니에게 아침밥을 먹이는 동안 할머니한테 잘하라는 큰 딸에 말에 엄마는 과거 시집살이 시절을 떠올리며 노골적으로 불평한다. 과거에 자신에게 했던 악행을 들먹이며 그 벌로 말년이 꼬였다고 비난한다. 큰딸은 할머니를 모시는 이유가 단지 생활비 때문이 아니냐며 엄마에게 비아냥거린다. 이에 엄마는 두 딸이 기르는 새장 속의 새가 날지도 못하는 바보 새라고 비난하며 이런 쓸모없는 새는 갖다 버려야 한다며 큰딸을 자극하자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큰딸은 크게 분노한다. 연극 오디션에 합격한 작은딸은 도 학생 연극 경연대회에 주인공으로 참가하게 되는데…”

연극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무엇으로 나는가?’는 ‘감마선은 달무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작품으로 철저히 갇히고 고립된 미래의 출구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넬슨 만델라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 연극은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바꿔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무엇으로 나는가?’는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현재를 위태롭게 살고 있는 어느 가족의 모습을 통해 희망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고민한다. 짐이 될 수도, 힘이 될 수도 있는 가족의 구성원들이 굳건히 서기 위해서는 서로의 배려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각자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 국제연극연구소H.U.E. '너무 놀라지 마라'. 대전연극협회 제공

◆너무 놀라지 마라(국제연극연구소H.U.E.-26일 오후 4시·7시30분)


“영화감독인 남편은 불황기의 영화계에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고자 고군분투하나 작업환경은 나아지는 게 없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려운 가정을 꾸려가는 아내가 밤새 노래방 도우미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시아버지는 유서 한통 남기고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 아내의 시동생은 은둔형 외톨이로 아버지가 죽은 줄도 모르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내의 소식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시나리오 수정 작업만 계속할 뿐이다. 이내 밤이 되자 아내는 노래방 일터로 나서고 남편은 탈고 한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 대표를 만나러 가고, 시동생은 축 늘어진 아버지의 시신 아래에서 찬밥을 차려 먹는다. 가족들은 아버지 곁에서 똑같은 일상생활을 계속하는데…”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의 해체를 무덤덤하면서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려냄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관계와 소통 부재, 고독을 성찰하도록 유도한 작품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불편함을 자아내면서도 곧 무너질 것 같은 한 가정에 연민이 느껴지도록 했다. ‘너무 놀라지 마라’라는 제목처럼 끔찍하고 놀라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라는 냉소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인물들은 어렸을 때 기억이나 SF영화 같은 환상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곳곳에 희비극적 요소를 배치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 극단 떼아뜨르 고도 '하이옌'. 대전연극협회 제공

◆하이옌(극단 떼아뜨르 고도-28일 오후 4시·7시30분)

“베트남에서 시집온 지 이주일 밖에 되지 않은 아내 하이옌은 어느 날 코로나19 의심환자로 당국에 의해 격리 수용된다. 며칠 후 하이옌은 환자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간다. 어느 거리에 버려진 아내는 남편이 살고 있는 집을 찾지 못하고 거리를 헤맨다. 한편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아내를 찾으려 하지만 외국인 신부라는 상황 때문에 사회에서 오히려 아내를 버린 나쁜 남편으로 오해를 받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남편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경찰의 도움을 얻어 내어 아내를 찾는다. 하지만 경찰이 찾아준 여자는 아내 하이옌이 아니다. 그러나 경찰은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려고 남편에게 아내라고 강요하기 시작한다. 결국 남편은…”

연극 ‘하이옌’은 어느 부부의 순수한 사랑, 잘못된 사회적 편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자에 의해 흐트러진 한 가족의 삶을 담고 있다. 과연 우리는 행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든 영역에서 서로를 이용하고 선동하며 거짓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지금의 사회, 순수한 부부가 세상에 이용당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완벽한 인간상은 없다. 그저 표류하는 인간군들의 삶이 있을 뿐이며 고귀하고 절대적인 삶의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의 희극적인 삶을 풍자하고 있다. 그 희극적 삶의 중심에 영천이 있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그는 순수한 결혼관을 가지고 있고 하이옌에 대한 사랑도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순수함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되고 만다.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마는 그는 가장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이 땅에 미만하고 있는 이기주의적 인간상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서로를 이용하고 선동하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작금의 세태. 우리는 행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진정으로 우린 서로가 사랑하고 아끼며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한편 제30회 대전연극제 시상식은 오는 28일 오후 9시30분 진행된다. 각 공연의 티켓 예매는 인터파크에서 할 수 있으며 모든 좌석 3만원이다. 자세한 사항은 대전연극협회로 문의하면 된다. 서유빈 기자 syb@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