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정월대보름에는 왜 오곡밥을 먹을까?

2020-01-29     충청투데이

이갑선 대전 대자연마을경로당 회장

내가 어렸을 때는 설날(음력1월1일)에서 대보름날(음력1월15일)까지를 명절로 보내곤 했다. 지금 돌이켜 봐도 어려서 맞이하던 설날 풍습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윷놀이, 널뛰기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풍물패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모든 액을 막아주는 축원을 빌어주며 마을공동자금을 모금했다.

그 후 오랫동안 즐거운 설날은 별로 없었다. 설은 1년에 한 번 세뱃돈을 버는 날이었다. 이제 세배를 드리는 기회도 사라졌다. 어릴 적 기다리던 설 명절이 그립다.


우리 고유명절 설에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대이동을 합니다. 사실 고향을 가도 별 좋은 일도 없는데 굳이 가는 것은 자랄 때의 그리움과 부모님을 비롯한 친지들과의 만남을 위해서다. 요즘은 교통수단이 좋아서 여행 삼아 가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못해 엄청난 고생을 하며 고향 길을 찾았다.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뜻으로 새날이라 하다가 ‘설날’로 변화됐다. 설날의 유래는 삼국시대부터 새해 시작의 날로 정해져 왔는데 일제강점기에 민족고유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본정부의 정책으로 전통명절인 설을 빼앗겼다가 해방 후에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이중과세니 하는 논란을 거듭 했지만 1986년에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다가 1990년에 정부가 정식으로 ‘설날’이라고 하고, 3일간의 연휴로도 정해 전 국민이 명절로 쇠고 있다.

설날이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큰 명절인 정월대보름이 온다. 옛부터 정월대보름에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놀이를 즐기고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먹으며 명절을 맞이한 기쁨을 나누었다. 알고 먹으면 건강까지 배로 챙길 수 있는 숨은 건강식품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

옛부터 정월대보름이 되면 새벽에 호두, 땅콩, 잣 등 부럼을 깨물었으며 치아가 튼튼해지기를 기원했고 아침에는 귀밝이술을 마셨다.

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나눠먹었다. 이 오랜 전통이 전해져 여전히 정월대보름이 되면 집집마다 고소한 아홉 가지 나물과 오곡밥이 식탁에 오르곤 한다. 한 해의 풍요로운 수확을 염원하며 액운을 쫓고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이날은 다섯 가지 잡곡을 섞은 오곡밥과 아홉 가지 묵은 나물을 먹어야 1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쫀득하고 담백하게 지은 오곡밥에 고소하게 볶아낸 아홉 가지 나물! 우리 조상들이 단지 맛만 좋아서 드셨던 것은 아닐 것이다. 선조들의 건강 지혜가 담겨있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 오곡밥은 찹쌀, 찰수수, 팥, 차조, 검정콩 등 다섯 가지 오곡에는 약 20가지 이상의 영양소가 들어있어 일반적으로 먹는 밥보다 훨씬 높은 영양가를 가지고 있다. 체내 독소 배출은 물론 몸을 가볍게 해주는 효과와 섬유와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며, 다양한 폴리페놀 성분을 함유해 혈당조절과 항암 효과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곡밥에는 반드시 아홉 가지 나물을 곁들여 먹었는데 곡식의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나물이 가진 녹색은 우리 몸의 간장을 보호해주는 역할로 환상궁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은 맛과 영양이 배가 되는 음식으로 겨울동안 편식으로 인한 영양의 불균형을 보충해서 앞으로 건강하게 농사일을 하려는 농경사회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식탁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건강식품을 드시고 건강한 한 해를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