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칼럼] 시장에서 생선 파는 엄마
2019-08-20 충청투데이
문희봉 시인·평론가·효문화신문 명예기자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읽어보고, 난 많은 것을 깨우쳤다. 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다 떨어진 고장 난 지퍼가 달린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해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뿐이었다.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기 죽지 않았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 날 밤 나는 졸음을 깨우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쳐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커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으로 올라가다가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엄마를 힘껏 껴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은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렸는데 여학생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 날 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워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날랐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을.
그들에게 찬란한 햇살이 피어오르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