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감독 "2군갈 때 정근우의 표정을 아직도 못 잊어"
"변화를 시도하고 앞장서는 정근우가 정말 고맙다" "작년 성적만큼은 아니지만 '가을야구' 충분해"
2019-02-25 연합뉴스
"변화를 시도하고 앞장서는 정근우가 정말 고맙다"
"작년 성적만큼은 아니지만 '가을야구' 충분해"
(오키나와=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용덕(54) 한화 이글스 감독은 2군행을 통보받았을 때, 정근우(37)의 참담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지난해 5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이었다.
2루수로 선발 출전한 정근우는 4회말 평범한 뜬공을 놓친 뒤 5회말 중도 교체됐다.
경기는 한화의 9-6 역전승으로 끝이 났지만, 정근우는 다음 날 2군에 갔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붙박이 주전 2루수로 활약한 정근우가 부상이 아닌 이유로 2군에 내려간 것은 2014년 한화 이적 후 처음이었다.
지난 24일 한화의 스프링캠프지인 일본 오키나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한 감독은 "정근우에게 2군 가라고 했을 때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이 되는 걸 봤다. 그 표정을 아직도 못 잊는다"고 했다.
걱정과는 달리 정근우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 섰다.
정근우는 지난해 2루수로 39경기에서 실책을 9개 범하는 등 자랑거리였던 수비에 발목을 잡혔다.
물러날 때를 안 정근우는 더는 2루수로서의 자존심을 고집하지 않았다. 2루수 자리에는 강경학-정은원의 새로운 경쟁 구도가 자리를 잡았다.
정근우는 자신보다 팀을 더 생각하면서 팀에 도움이 될 길을 찾았다. 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중견수로 시즌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한 감독은 "내가 정근우의 위치였다면 대놓고 불평, 불만을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근우는 그런 게 없다. 이번 캠프에 외야수 글러브를 먼저 챙겨오더라"고 말했다.
정근우의 변화는 곧 팀 문화의 변화를 상징한다.
'나도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베테랑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게다가 한화는 이번 캠프에 변우혁, 노시환 등 구단 사상 최다 신인을 데려왔다.
한 감독은 "김태균은 캠프 올 때까지 정말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몸과 마음가짐이 예전과 매우 다르다"며 "송광민은 작년에 저렇게 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FA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한 감독은 "내가 한화 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의도했던 것만큼 팀의 문화가 바뀐 것 같다"며 "고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며 신인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선의의 경쟁이 팀을 깨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감독은 성적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한 감독은 "사실 지난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와서 올해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떻게 풀어갈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치열하게 훈련하는 모습과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저 정도면 한번 경쟁력 있게 싸워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한 감독은 "작년보다 좋은 성적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가을야구' 정도는 충분히 해보지 않을까 싶다"며 "물론 궁극적으로는 지속해서 잘하는 팀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초석이 잘 다져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 감독은 "베테랑들이 역할을 잘해줘야 팀이 바로 설 수 있다. 그런데 베테랑들이 그걸 알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며 "팀 문화가 바뀌는 길을 열어준 정근우가 그래서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물론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정체된 팀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한 감독이 초지일관 밀어붙인 결과다. 그렇게 내부 경쟁을 통해 팀이 한단계 도약하면서 한화는 지난 시즌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한 감독은 "작년 취임했을 때만 해도 일부 선수들은 초보 감독인 나를 편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태한 측면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묵묵히 가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1년 만에 달라졌다"며 "작년처럼 올해도 변함없이 한 곳을 바라보고 꾸준히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