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러웠던’ 과거…이제는 변해야 한다
2018-03-29 충청투데이
프라하 출신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거대한 권력 앞에 선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절망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변신’에서는 인간의 비인간화를 여실히 보여 준다. 주인공 그레고리는 본인 희생으로 가족들이 안락한 삶을 이어갔지만, 어느 날 가족들에게 쓸모없는 흡사 벌레(蟲) 같은 취급을 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그레고리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죽는다. 그의 죽음은 가족에게 골칫덩어리 벌레가 사라진 기쁨이었다. 독일어에는 '카프카스럽다(kafkaesk)'는 말이 있다. 이는 카프카와 같은 인간의 기이한 부조리함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는 어느 순간 '맘충(蟲)'이 되어버렸다. 또 노인들은 '틀딱충', 남성은 '한남충', 여자는 '메갈충'으로 불린다. 그들은 헌신하는 삶을 살았겠지만, 지금은 내가 가져야 할 특권을 빼앗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개인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존귀함'이 없는 곳에서는 누구나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고, 언제나 카프카스러움이 자라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이다. 독일과 미국이 개인주의로 탈바꿈하면서 번영의 길을 걸었다면, 한국은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로 성공에 이르렀다. 산업화 시대의 새마을운동,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은 한국 고유의 집단주의 문화를 보여 주는 예이다. 하지만 집단주의도 극에 달하면 '출세'라는 당근 앞에 '알아서 기는' 충성의 조직으로 변할 수 있다. 집단 안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행복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개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선 권력은 인간이 인간을 모독하는 카프카스러운 벌레(충·蟲)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1/4이다. 이들은 대부분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철학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한국의 시대정신은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문화다. 시대정신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미투 가해자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특정인의 경우 개인을 넘어선 희생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구시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다른 가해자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를 교묘히 이용하는 구태를 보여준다.
100년 전 독일도 지독한 집단주의적 카프카스러움의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주의 문화 속에 세계 최고의 나라로 번성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변해야 한다. 미투 운동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들이는 시발점으로, 한 개인을 넘어서 그곳에서는 언제나 충성 충과 벌레(충·蟲)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집단주의 권력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시대정신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