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공원과 美24사단, 그리고 百濟
2017-12-05 충청투데이
변평섭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
[투데이포럼]
월평공원에 있는 월평산성은 해발 137m밖에 되지 않지만 그러나 서·북·동쪽으로 확 트였고, 그 앞에는 갑천이 길게 흐르고 있어 전략적으로는 매우 중요하다.
6·25전쟁 때 딘 장군이 지휘하는 미 24사단의 34연대 지휘소(CP)를 이곳에 설치한 것도 이런 지리적 장점 때문이었다. 1950년 7월 15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미 21연대, 34연대가 금강을 도하하려는 인민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이튿날, 그러니까 7월 16일 새벽 '금강방어선'은 무너졌고, 도리없이 사단장 딘 장군은 부대를 후퇴시켜 월평공원에 CP를 차리고 대전 사수에 들어갔다.
그렇게만 하면 일본에서 오고 있는 미제 1기갑부대와 또 다른 지원병력 25사단이 대전전투에 투입될 것이라고 했다. 워커장군은 그렇게 지시하고 딘 장군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는데, 불행히도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워커장군은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 전투를 진두지휘한 명장이었지만, 1950년 12월, 서울 북방 전선을 시찰하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딘 장군은 대전을 빠져 남으로 내려가다 전북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혀 3년의 긴 포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월평산성에서 대전사수를 위해 악전고투하며 딘 장군이 그렇게 기다리던 기갑부대와 지원부대는 안타깝게도 때마침 동해 바다를 강타하던 태풍으로 지연되었으며 어쩔 수 없이 후퇴를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대전 사수에는 실패했지만 딘 장군이 이렇게라도 버텨줌으로써 미군과 우리 국군이 낙동강에 전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어줬다고 전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월평산성에 올라 멀리 세종시와 유성 동쪽으로 전개되는 회덕, 신탄진 평야, 그리고 갑천을 내려다보면 그때의 그 치열했던 전황과 포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월평산성은 6·25전쟁 하고만 관련이 있는 게 아니다. 1995년 국립공주박물관이 이곳에서 세발 토기, 소위 삼족기를 발굴했는데 이것은 이 산성이 백제의 성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학사들은 말한다. 사실 이들 삼족기는 백제의 땅이었던 충남지방에서 주로 발굴되는 것 역시 그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자연석과 함께 여러개의 계곡을 감싸며 쌓은 산성, 즉 포곡식산성인 원평산성은 둘레가 710m 밖에 안 되지만,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 있는 테미산성과 함께 신라와의 국경선을 지키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우리 대전시민의 삶의 현장에서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史實)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또 이런 것이 훼손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다시 한번 월평산성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