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순응하며
2017-08-24 충청투데이
[에세이]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불볕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는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이상기온은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불볕더위 주의보가 내린 요즈음 기운도 없고 의욕도 상실한 짜증스런 날이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가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목에 수건 하나를 걸고 우암산으로 향했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혼자서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땀을 흘리며 걸으니 답답하고 무기력한 나의 몸에 생기가 돌아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시원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동안 아집과 욕심에 사로잡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혼자만의 생각에 괴로워했다. 돌아보니 나를 방어한다는 알량한 아집의 빗장을 걸고 나만의 욕심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틈을 보여 주는 것이다. 틈이 없다면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 올 수 없다.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문을 연다면 많은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갑자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린다. 불볕더위에 지친 우암산이 진한 초록 향기를 후드득 쏟아 낸다. 나도 소나기에 흠뻑 젖었지만, 무더위에 지친 마음이 진초록 향에 상큼하다. 앞으로 내 생의 종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많은 계절을 만날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준비 없이 허겁지겁 보낸 세월을 앞으로는 잠시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고 맑은 옹달샘에서 목을 축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어느새 해가 반짝 났다. 잠깐 비낀 소나기 덕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불볕더위일지라도 흐르는 세월은 거스를 수는 없으리라. 나 또한 세월에 순응하면서 남은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