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2017-02-14     충청투데이
김갑중 을지대병원 정형외과 교수·진료협력센터장
[수요광장]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의 집록인 ‘권학편’(勸學篇)에는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한다. 이는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다’라는 말이다. ‘청출어람’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쌓아 놓은 업적을 벗삼아 제자가 노력을 해야지만 뛰어 넘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제자들의 학문적 노력을 분발케 하는 뜻을 담고 있다.

청출어람 청어람과 엄밀히 같은 뜻은 아니지만 필자가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맹자(孟子)의 군자삼락 중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인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라는 고사성어로,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이다’라는 뜻이다.

뜬금없이 왜 고사성어 이야기인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전공의 수련병원인 대학병원에서 필자의 전문과목인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고자 하는 ‘레지던트’(수련의)를 선발하고, 이들에게 4년간 교육을 행하고 있다.

일단 전공의로 선발되면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가족들도 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 보다 병원에서 환자들, 동료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은 다반사이고, 집보다 병원 당직실 생활이 더 익숙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4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 시험을 통과하면 비로소 전문의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수련기간 중 전공의들은 이론과 실기를 통해 방대한 분량의 교과서에 기술된 환자 치료 원칙, 수술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필자는 세부 전공 분야인 족부-족관절 외상 및 질환 환자들과 근-골격계 종양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면서 전공의들에게 필자의 경험과 교과서의 내용을 접목해 가르치고 있다. 필자 역시 위와 같은 수련 과정을 통해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으며, 이러한 교육 과정은 특정한 기술을 가진 장인의 직업교육 제도인 ‘도제(徒弟)교육’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을지대병원 정형외과에서 많은 전공의들과 생활해왔다. 전공의 생활을 거쳐 정형외과 전문의가 된 후 각자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전공의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간혹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이들도 있다. 필자의 환자 진료와 수술에 ‘보조수’(Assistant)로 참여하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과서 내용은 이러한데, 이와는 달리 저런 방법으로 하면 안 될까요?”라든지, “지금 하시는 방법 말고 이러한 방법도 가능할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한 방법은 적합하지 않은가요?” 등의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될 때 필자는 “좋은 지적인데, 자네가 생각한 방법은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야. 아무튼 좋은 질문이야.” 또는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놀라워. 나도 참고문헌이나 저널을 찾아보고 대답해 줄게.” 등으로 답하곤 한다.

전공의들에게 일명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매우 좋을 뿐 아니라 나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내가 가르쳐준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기특하며,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질문하면 나부터가 이 자리에서 안주하지 말고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들이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나면 필자보다 더 훌륭한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때문에 오늘도 환자 진료나 수술 도중 필자를 벙어리로 만들게 하는 질문을 받고 싶다. 이들이 곧 청출어람 청어람의 장본인들일 것이고, 이들을 통해 필자도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