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도, 탄핵도, 질서없는 퇴진도 '질서가 없다'
[충청로]
2016-11-30 나재필 기자
▶박대통령이 세 번째 사과(300초)를 했다. 1차 때 사과는 100초, 2차 때 사과는 560초였다. 1·2차 때 담화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아니, 잘못했다고 치자. 그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야?'라고 말했다면 이번엔 '내가 잘못했다. 아니, 잘못했다고 치자. 그러니 국회서 물러날지, 말지를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임기단축 퇴진론'은 포석(布石)이다.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하야는 법정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탄핵은 망명할 수도 있는 곁길이다. 그렇다면 '퇴진'은 결국 '질서'를 무시하고 퇴로를 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단지 감쪽같이 속았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버틴 것과, 용서를 구하면서도 진정성이 없었다는데 있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번 게이트가 대통령과 국정농단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반적인 국가시스템의 붕괴라는 게 더 두렵다. 국정을 농단하는데도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걸러내지 못했으며,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게 두렵다.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고는 차기, 차차기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시위의 촛불은 국민의 감정선을 오롯이 담고 있다. 종이컵 안에는 분노로만 채워진 게 아니라 희망도 함께 담겼다. 주권 도둑들이 결코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절제된 분노가 필요하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