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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의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맛있는 안주'라는 의견이 가장 많지 않을까? 그렇다. 안주는 일단 맛이 좋아야 한다. 맛이 좋은 안주는 술의 맛을 돋우는 좋은 친구이자, 동시에 다음 잔을 부르는 촉매이다. 부실한 안주와 함께 마시는 술의 맛은 처참하다. 새우깡과 소주의 조합은 한 때의 즐거운 추억이 될 순 있지만, 재현하고 싶은 추억은 아니지 않은가?

'맛있는 안주'가 추가로 갖춰야 할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꽤나 의견이 갈릴 것 같은데, 일단 안주를 '썰'로 푸는 만큼 술꾼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술꾼도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 안주를 곁들이는 술꾼, 그리고 안주를 맛있게 먹기 위해 술을 곁들이는 술꾼. 국어사전에 따르면 술꾼은 '술을 좋아하며 많이 먹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술꾼은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전자의 술꾼이라면 '배부르지 않은 안주'를 그 다음으로 꼽지 않을까? 술 좀 먹는다는 사람들이 생선회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생선회를 좋아하는 술꾼들이 모두 친한 것은 아니다. 탕수육을 둘러싼 '부먹'과 '찍먹'의 치열한 논쟁처럼, 회를 선호하는 술꾼들도 생선회를 먹는 방식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실랑이는 보통 정통을 자처하는 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정통파(?)들은 생선회를 초장에 찍어먹는 일을 끔찍하게 여긴다. 초장이 생선회의 섬세한 감칠맛을 가려버린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이들은 간장에 겨자를 푼 겨자장이 아닌 초장에 생선회를 빠트리는 일을 재앙처럼 여긴다. 종종 IS처럼 극단적인 '회부심'은 초장에 생선회를 찍어먹는 자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해 즐거운 술자리를 불쾌한 기억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남부럽지 않게 술을 마셔보고, 또 민물과 바닷물 등 서식지와 어종을 가리지 않고 온갖 생선회를 먹어본 입장에서 꼰대처럼 '썰'을 풀어보자면 '회부심'에는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중에서 팔리는 생선회는 대개 활어이다. 솔직하게 고백해보자. 활어에서 감칠맛이 풍부하게 느껴지던가? 나는 활어를 먹을 때 쫄깃한 식감 외에 감칠맛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활어는 초장을 듬뿍 찍어 마늘, 고추와 함께 상추로 싸먹는 게 제일 맛있었다. 활어횟집에서 생선회를 먹을 때 주인장이 쌈채소를 잔뜩 가져다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렇게 먹는 게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어는 주로 일식집에서 많이 나오는 편인데, 이를 초장에 찍어먹으면 맛이 어떻던가? 흐물흐물한 선어의 식감에 뒤섞인 초장의 맛은 비참하다. 좋은 선어는 겨자장도 필요 없다. 선어는 그냥 먹어도 복잡한 결의 감칠맛이 폭발하니 말이다. 굳이 간을 더하자면 회의 끝부분을 간장에 살짝 적신 뒤, 생 와사비를 곁들이면 된다. 선어를 내주는 집에서 쌈채소를 내주는 일이 드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렇게 먹는 게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활어와 선어로 구분해 먹을 수 있는 바다생선과는 달리, 디스토마 등 기생충에 취약한 민물생선은 대개 활어로 먹는다. 송어, 향어 등 활어로 먹는 민물고기는 역시 초장을 듬뿍 넣고 쌈이나 무침으로 먹어야 제 맛이다.

내 고향 대전과 가까운 대청호 주변에는 이름난 민물고기 횟집이 많은데, 이런 집들은 보통 잘게 썬 쌈채소와 회를 손님에게 함께 내온다. 사발에 적당량의 회와 상추, 미나리 등 쌈채소를 넣고 초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은 뒤 비빈다. 그야말로 꿀맛이다. 초장을 머금은 회와 뒤섞인 미나리의 향이 정말 일품이다. 지인들과 생선회를 먹을 때 '회부심'이 불쑥 들면 참는 게 신상에 좋다. 꼰대 취급 받기 십상이니 말이다. 굳이 '회부심'을 부리고 싶다면 "이렇게 한 번 먹어보면 어때?" 수준의 조언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도 '회부심'을 부리고 싶다고? 그렇다면 자기 돈으로 좋은 회를 사주면서 '회부심'을 부려라.

(이 글은 6월 19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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