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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무궁화호를 타고 영등포에 내려 영등포에서 인천행 전철을 타고, 다시 한 번 갈아타고 찾아간 인천 서운 중학교.

내 작은 오빠가 한문선생님으로 근무하는 학교엘 방문했다. 오빠가 선생님이 되시고 내년이면 정년이신데 오빠가 몸담은 학교를 처음 가보는 기분, 참 설레이고 심장 쿵쿵 뛰는 일이었다.

오빠는 선생님이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입학 대신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이미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신문배달은 기본이었고 아이스께끼통을 짊어졌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시계 케이스 만드는 공장엘 들어가 돈을 벌었다. 그 어린 오빠가 버는 돈은 우리집의 살림을 어렵게나마 이어가는 끈이었다. 그러다 오빠는 시계케이스를 찍어내는 기계에 손을 다쳤다.

그 기계는 쇠를 자르는 것이니...어린 손의 뼈야 남아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적이었다. 오빠의 손가락은 그대로 있었다. 그날 밤 고통을 참는 오빠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 파르르 떨리던 오빠의 손...눈물이 났었다. 표현도 못하고..

오빠는 양복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며 그의 10대에서 20대 초반을 양복기술자로 보냈다. 오빠의 월급날은 내게 기다림 이었다. 두살 더 먹은 오빠가 사주는 짜장면 한 그릇, 내게는 천국이었다.

오빠는 재봉틀을 많이 돌려서인지 늑막염을 앓았다. 밤마다 쿨럭였다. 하얗게 시들어갔다. 우리 오빠는 ... 오빠가 양복점에서 지내는 그동안 어떤 아픈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그당시 기술자들의 갑과 을.. 횡포이다 시피한 시다 시절의 아픔..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다 우리오빠는 기술자가 되었다.

오빠가 남은 양복천으로 만들어 준 치마를 입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오빠는 알까? 변변한 옷이 없는 동생을 위해 만들었을 치마였으니...

오빠는 스무살이 넘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 알파벳을 열심히 외웠다. 처음엔 양복지에 써 있는 영어를 알려고 했다지만 오빠의 가슴엔 꿈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참 자랑스러웠다. 그러고 우리 작은오빠는 공주사범대학교에 당당히 입학했다. 오빠의 입학식을 보러갔다.

오빠는 나를 보고...미안해 했다.

오빠와 같은 처지에 있는 나를 두고 대학에 혼자 입학한다는 게 나에게 미안한 일이었나보다. 나는 참 자랑스러웠는데...

오빠의 졸업식에도 나는 갔었다. 그 때도 오빠는 나에게 무지 미안해 했었다. 나는 참 자랑스러웠는데...

그리고 오빠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오빠는 선생님이 되셨다. 남들보다 몇 년 늦었지만 우리 오빠는 정말 자랑스러운 선생님이 되셨다. 오빠의 지난한 어린시절, 이프고 힘든 그시절이 있었기에 오빠는 고등학생 제자도 중학생 제자도 품어안았다. 이해할 줄 알았다. 그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오빠는 지금 중학교 한문 선생님이시다. 담임하는 반 학생들에게 늘 꿈과 웃음을 주신 우리오빠는 올 2학년 제자들에게 매달 아름다운 예술제를 열어주신다고 한다.

가야금 연주도, 방송댄스도, 그리고 이 달은 시인으로 시낭송가로 활동하는 나를 불러 학생들의 시낭송을 함께하게 했다.

바로 아래 여동생도 시낭송대회 최우수상을 탔기에 동생과 동행했다. 오빠의 동생들은 오빠의 멋진 모습을 보게 돼 기뻤다. 2학년 학생들이 직접 쓴 시를 가지고 낭송했다. 교감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시낭송이 시작됐다. 진지하다. 아무도 떠들지 않았다. 그리고...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나는 그 학생들 모두에게 일등상을 주었다. 대상, 최우수상, 그랑프리으뜸상, 최고상, 그랑프리상, 챔피언상..모두 일등이었다. 지켜보는 선생님들도 교감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셨다. 오빠가 마지막 소감을 말하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내가 대학에 갈 때 가장 미안했던 동생이...마흔둘에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시작하더니..12년을 공부해 대학과 대학원을 나왔습니다.

내 이야기였다. 부끄럽지 않은 내 이야기였다. 그리고 시인으로 시낭송가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 동생을 오빠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그런 오빠. 그 오빠의 학교에 가서 별들의 마음을 듣고 왔다. 시낭송을 해주며, 이 시 한줄로 꿈을 이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성껏 시낭송을 해주고 돌아왔다. 별들을 가슴에 안고...

(이 글은 4월 21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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