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35>
배재대 석좌교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도 이제 하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는 요즘이지만 실은 마음의 추위가 더 매섭습니다.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 탓하기 바쁘고 이제는 여야의 대립뿐만 아니라 여여, 야야의 내부적 분열도 보기에 민망합니다. 정부는 경제의 완만한 상승세를 예측하고 있으나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수출부진의 영향으로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중국의 경제 불안과 미국의 금리인상 등 이른바 G2 리스크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G2 리스크에 따른 세계경제의 거대한 변화가 반드시 위기만은 아니지만 면밀한 대책이 요망되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내년 ‘정년 60세’ 제도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과 금융권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희망퇴직 칼바람을 맞는 50대는 물론이고 20대까지 명퇴 대상에 올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의 여파로 안 그래도 부평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떠돌며 살아야 할까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조차도 다른 세상일처럼 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장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무의탁 노인, 결손가정, 노숙자, 장애인들이 그들입니다. 전국적으로 41만 명의 아동들이 끼니를 거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치나 경제, 기업의 구조조정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생존이 문제이며, 하루하루 지내기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따뜻하게 입고, 먹고, 자고, 웃는 우리의 일상조차도 송구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짐을 덜기라도 하듯이 연말이면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해가 지나고 나면 늘 불만족스러워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성금으로 돈 몇 푼 내고,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고, 연탄 배달을 하는 것이 고작인데 그것이 얼마나 그들의 근본적인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정부도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나 공적부조제도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 제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사회복지 예산은 GDP대비, OECD국가 중 최하위이기 때문에 현장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차제에 사회복지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정립하고 국민들의 뜻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예산의 확대,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선,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계층 혼합적 공공시설 (예컨대 대중교통, 문화·스포츠 시설, 교양프로그램 등)의 확대 및 고급화 등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려운 분들의 주머니에 선물을 넣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들의 존엄을 인정해주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여러 상념으로 번민하다가 인도 캘커타에 있는 슬럼가의 비통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린 영화 ‘시티 오브 조이’(기쁨의 도시)를 떠올려봅니다. 최하층 빈민들과 나병환자들이 살아가는 그곳을 역설적으로 ‘기쁨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일, 가정 폭력으로 멍든 부인들을 보살펴 주는 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등 자신이 원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대사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모든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다.(all that is not given is lost)” 다시 한 번, 이 명대사를 가슴에 새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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