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29>
배재대 석좌교수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좌파와 우파의 갈등이 심합니다. 단순한 갈등이라기보다, 어느 한 입장을 자인한 사람들은 각자의 성을 쌓고 요새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는 국제적인 기준과는 좀 다릅니다. 알려진 바대로 좌·우파는 프랑스에서 연유된 것으로 1789년 혁명직후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았고 왼쪽에는 공화파가 앉았는데 그것이 각각 우파와 좌파의 기원입니다. 정치적으로 우파는 점진적, 보수적 정파를 뜻하고 좌파는 급진적, 혁신적 정파를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보편적 분류와 별도로 6·25전쟁을 거치면서 좌파는 공산주의체제 신봉자, 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신봉자라는 뜻으로 해석을 하고 있고, 특히 보수층 에서는, 여전히 좌파=친북=북한이라는 등식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우파 역시 독재, 친일 또는 미국적 자본주의의 전파자들로써 인권과 사회의 양극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운동권이라는 연고로 맺어진 특수한 인간관계에서 결속하고 만들고 실천하는 좌파적 노선이 있어 조금은 특이합니다.

한편, 근래에는 상호간 또는 진영 내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지요. 우파 내에서도 경제민주화나 사회적 경제를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좌파 내에서도 김규항 같은 언론인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좌파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우파’라고 평가하면서 자유주의 우파들은 먹고 살만한 양식 있는 시민을 대변할 뿐이며 “이 개념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자신을 좌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좌파란 무엇인가?”라고까지 비판합니다.

미국에서 외교문제를 놓고 이념적 갈등이 있을 때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게 정치에 관해 질문을 하면 “저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닙니다. 양파(兩派)라고 할 수 있지요(I'm not for the left wing or the right wing I'm for the whole bird)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 역시 하고 싶은 대답입니다. 저는 북한에 대해 철저히 비판하며 시장 경제 원리를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분명히 우파입니다. 그러나 복지를 중시하고 국가 운영에서 국가의 역할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좌파적 시각도 가졌습니다. 다만 친북 세력이라고 오해를 받을 것 같아 일부 좌파적 시각을 강조하지 못하고 있는 비겁자이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2012년 17년만에 올랑드의 사회당이 승리함으로써 좌파 정권이 탄생되었습니다. 또한 1997년 유럽 연합(EU) 15개 국가 중 13개 국가에서 좌파가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럽 연합이나 프랑스도 국내외 정책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같은 좌파적 성향의 정치인이지만 보다 온건한 올랑드를 선택했고 보다 급진적인 장 뤽 멜랑숑 좌파전선 연대후보는, 선전은 했지만 그의 ‘인간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좌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최근에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저서에서 충분히 지적되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고 선거를 필패로 만든다고 단정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의 마지막 주장은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는 것입니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상대편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지요. 우파든 좌파든지 싸움의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사람은 소수지만 그 광경을 들여다보는 구경꾼들은 다수입니다. 정치인들이여! 구경꾼은 싸움꾼보다 몇 백배, 몇 천배가 많기 때문에 놀랄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항상 그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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