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 http://blog.naver.com/azafarm

세계유산이란 유네스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보호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서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곳은 얼마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부여 능산리 고분군입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국경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이며 현재 및 미래세대 전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문화 또는 자연적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능산리 고분군, 과연 어떠한 점이 이러한 점을 인정받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능산리 고분군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여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31일까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너무 늦게 소개를 해드려서 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료 입장과 함께 등재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농어촌버스를 이용해서도 능산리고분군을 찾을 수 있는데요.

사실 위 시간표를 봐서는 도대체 언제 버스를 탈 수 있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누구나 손쉽게 이용이 가능하도록 조금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탁트인 넓은 잔디밭이 나옵니다. 저 멀리 봉긋 솟아있는 것이 고분군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나성 동쪽 밖에 위치한 백제 왕릉입니다. 총 7기의 고분이 위치하고 있는데요.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세가지 유형의 굴방 돌방무덤이 있음이 조사되었고 천장 건축방법이 볼트형 천장에서 육각형 또는 사각형 평천장으로 변화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능산리 고분군을 찾아온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해설사님께 여쭤보니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예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분군을 찾고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능산리 고분군을 비롯해 공주 송산리 고분군 등은 중국-백제-일본을 잇는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를 집약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합니다.

아시다시피 무덤의 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는데요, 그 시대의 축조기술과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분군 옆으로는 또하나의 작은 무덤이 있었는데요, 바로 의자왕의 무덤이 그것이었습니다. 사실 의자왕의 무덤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고 지난 2000년도에 의자왕의 혼을 모시는 의례를 치루며 이곳에 의자왕의 무덤을 세웠다고 합니다.

백제왕들 중에 알고 있는 왕 셋을 들라고 하면 아마 그중 하나가 의자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의자왕은 그야말로 나라를 말아먹은 왕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의자왕의 업적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왜곡된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는 신라라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였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부여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유적들을 찾은 것이 처음인데요, 능산리 고분군을 모두 둘러본 후에 다시 길을 찾아 나성으로 가려고 계획했었죠.

그런데 이게 왠일~! 능산리 고분군 바로 옆에 백제 나성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어요? 어이없게도 “참 운좋다….”는 생각을 하며 백제 나성에 대한 안내를 우선 읽어보았습니다. 나성은 현재 보수중인지 비가림천이 씌워져 있었는데요 나성이라는 안내문이 없었으면 무언지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나성은 흙을 쌓아 올린 토축산성으로 수도를 지키기 위한 외곽성이었다고 합니다. 성왕때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성왕이 즉위했을 때가 523년이니 어림잡아도 1400년이 훨씬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성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에는 절터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절터가 바로 백제 예술의 진수로 일컬어진는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곳입니다. 능산리 고분군 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던 중 대량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백제시대 절터라는 것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곳에 있던 사찰은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인 일탑일금당식 양식으로 부처님을 모신 금당 앞에 한개의 탑이 위치한 양식임을 발굴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탑이라고 하면 보통 석탑을 생각하실 텐데요, 이곳에 있던 것은 건물처럼 높이 솟은 목탑이었습니다. 예전 일본을 여행하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의 목조건축물인 호류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능산리에 있던 사찰도 아마 호류지를 많이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601년부터 607년까지 조성된 호류지는 바로 백제 기술자들에 의해 백제 양식으로 지어진 사찰로 호류지를 둘러보며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백제 유적들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어릴적 수학여행으로 찾아갔던 부여를 어른이 되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신라문화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백제문화가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충남도에서도 백제문화권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앞으로 찬란했던 백제문화가 내포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소망하는 바 입니다.

(이 글은 8월 30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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