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속 역사이야기④]신경직 LH공사 충북본부 부장

충절의 고향인 우리 충청도에는 조선의 여섯 번째 임금으로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에게 보위를 내어준 비운의 왕 단종에게 충절을 지킨 충신들의 이야기가 지명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최근 상전벽해(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다)를 실감케 하며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는 세종시 장군면에는 대교리(大橋里)가 있다. 한자대로 해석하면 다리(橋·교)가 있어 붙여진 지명 같지만, 여기서 말하는 다리는 사람 인체 일부 인 다리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방해가 되는 신하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세종 때 6진을 개척하고 북방을 호령했던 김종서 장군이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함께 길을 걷다 김종서에게 한 눈을 팔게 하고 그 틈을 이용해 숨어있던 장사들을 불러 쇠망치로 때려 죽게 했다.

이때 김종서 장군에게는 평소 아끼던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김종서가 쓰러진 것을 보고 장군의 다리 한쪽을 물고 밤낮으로 달려 이곳으로 달려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당시 말이 물어온 김종서의 다리 한쪽만을 묻고 묘를 썼고, 그 무덤이 있는 곳을 ‘한 다리’라고 했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교량을 뜻하는 ‘다리 교(橋)’로 음차되면서 엉뚱한 표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대교면에는 김종서 장군의 묘가 위치하고 있어 ‘대교리’ 지명의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노은리(魯恩里)는 조선 세조가 나이 어린 단종 임금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하여 영월로 내쫓자, 단종 복위를 도모했다가 발각돼 모진 고문 끝에 순절한 ‘매죽헌 성삼문(梅竹軒 成三問)’이 태어난 곳이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성삼문이 태어난 곳이란 ‘매죽헌 터’가 남아 있다.

노은리(魯恩里)란 지명은 숙종 때 우암 송시열 선생이 매죽헌 성삼문이 노산군(魯山君·단종)의 은의(恩義)를 지킨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노은동으로 고친 후 지금까지 불리워져 오고 있다.

청주에서 충주 방면으로 국도 36호선을 타고 가다 괴산군 소수면 방향으로 틀면 고마리(叩馬里)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고마리는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이극관 등 많은 신하들을 죽이자 형조판서를 지낸 ‘허후’가 그 잘못을 간언하다 결국 세조의 노여움을 사 거제도로 귀양가던 도중 이곳 괴산에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세월이 흘러 정조 때 허후가 충성스러운 간언을 해 미움을 받았을 뿐 그 정신은 백이, 숙제에 버금간다고 해 허후의 충정을 높이 칭송했다. 이에 충신의 충언을 뜻하는 고마이간(叩馬而諫·말고삐를 붙잡고 임금께 직언하다)이라 하여 붙여진 이곳의 지명이 고마리(叩馬里)가 됐다는 전언이다.

이외에도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발각돼 처형당한 금성대군의 절개를 추모하기 위해 붙여진 충북 진천군 용기리의 ‘수의(守義)마을’, 세조를 살해하려다 발각돼 죽임을 당한 ‘봉여해(奉汝諧)’의 일족들이 숨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충북 증평군 율리의 ‘봉천(奉天)마을’ 등이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 충신들의 충절을 전해주는 지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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