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 17]배재대 석좌교수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은 지금부터 32년 전에 처음 출판된 이래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지난해 4판까지 인쇄를 했다고 합니다. 책머리에 밝힌 작가의 표현대로 ‘잘못된 권력을 야유할 속셈으로’ 집필했다는 ‘완장’이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완장 문화’가 존재한다는 방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흥길의 ‘완장’은 풍자성이 강한 전라도 사투리와 질펀한 입담으로 해학성을 잘 살린 장편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설속의 주인공 임종술은 ‘어려서부터 대처(도회지)로만 떠돌면서 쌈질로 잔뼈가 굵은 놈’이며 해방 후에는 노점상, 포장마차, 미군부대 물건을 빼내 파는 일 등 험하게 살다가 고향에 내려와서는 ‘농사는 땅이 없어서 못 짓고, 장사는 밑천이 없어서 못 허고, 품팔이는 자존심이 딸꾹질 허는 통에 못 허는’ 불량배인데, 어느날 저수지 사용권을 얻은 동네 부자 최 사장으로부터 감시원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바로 승낙을 합니다. 완장을 찬 종술은 무단으로 낚시질하던 도시에서 온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한밤에 몰래 물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과 그 아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기도 합니다. 완장이 가진 힘과 권력을 한껏 발휘하던 그는 마침내 완장의 힘에 도취하여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게 됩니다.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하려 했고, 결국 감시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는 내용입니다.

‘완장’의 사전적 의미는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팔에 두르는 표장’으로 되어 있고, 소설 ‘완장’에서의 완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완장의 의미는 일제시대 경찰과 헌병을 상징하기도 하고, 6.25때 인민군 점령지에서 머슴과 소작인들이 두른 붉은 완장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자유당 정권 때는 선거 때마다 무더기로 완장차고 투표장에 나타나 유권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5.16 쿠데타 때에는 서울에 진주한 군인들의 팔에 ‘혁명군’이라는 완장이 차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완장의 의미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호가호위하며 으스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소설의 임종술처럼 기본적 소양이 없는 사람이 권력에 아부하거나 기생해서 쥐꼬리만한 권한을 얻어 그것을 무소불위로 남용합니다. 결국에는 자신에게 완장을 채워준 사람까지도 얕보는 자가당착에 빠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 중 몇은 자신의 주인을 배신하여 얻은 완장으로 또다시 새 주인을 배신하는데 쓰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빛깔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수많은 완장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거 승리의 전리품으로 등장한 많은 완장들, 운 좋게 ‘나으리’는 되었으나 잠재된 열등감으로 ‘갑질’을 일삼는 완장들, 공익적 기능을 망각하고 지나치게 권력화된 일부 기관의 완장들, 높은 분들 모시면서 권한을 횡령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완장들, 남편의 권력을 자기 권력인 양,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고 뻐겨대는 사모님 완장들, 그리고 완장에 주눅이 들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완장 추종자들이 우리 주위에는 널려 있습니다.

이러한 완장들의 실태를 보면서, 소설 ‘완장’을 통해 밝혀내려고 했던 작가의 창작의도는 “꾀죄죄한 가짜 권력의 떠세하는 행태를 그려 보임으로써 진짜배기 거대권력의 무자비한 속성을 끄집어내고 싶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눈에 드러나는 완장도 있지만, 뒷전에 숨어서 조종을 일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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