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조재근 온라인뉴스부 차장

참으로도 잔인한 6월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러운 초록의 계절이 정체 모를 바이러스 공포 속에 숨죽이며 사라져 버렸다.

담장 사이 고개를 내민 장미의 은은한 향기도, 초여름 들판의 초록 숨결도 하얀 마스크에 가려졌다. 이렇게 우리의 6월은 공포와 의심, 그리고 불신 속에 사라졌다. 확진자 183명, 사망자 33명, 격리자 1만 6000여 명이 발생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국가재난과도 같았던 이번 사태는 1개월여 만에 종식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메르스는 우리에게 소중한 6월을 빼앗았지만, 정부는 물론 국민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우린 그간 영화나 소설로만 떠올리던 이른바 ‘감염 질병’(바이러스)의 공포를 실제 경험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큰 주목을 받았던 한국영화 ‘감기’(2013년)와 소설 ‘28’(2013년)을 보며 상상했던 모습은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재난 상황에서 무능한 정부의 대응책이나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제대로 된 정보 공개 없이 “전염력이 높지 않다”는 오판 속에 진실을 숨기기 급급했던 정부와 이런 정부를 믿지 않았던 국민. 어느샌가 높게 쌓인 불신의 벽은 결국 메르스 사태를 키운 주범이 됐다.

이런 불신의 결과는 생각보다 참혹했다. 국민의 자발적인 협력과 소통이 필수인 감염 질병 사태임에도 정부는 공연히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스스로 귀를 막고 입을 닫았다. 그 사이 메르스 바이러스는 속수무책으로 퍼졌다.

국민 역시 이런 정부를 신뢰하지 못했다. 정보의 출처도 사실 여부도 전혀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마치 진실처럼 포장되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한편에선 의료진 통제를 무시하고 병원을 박차고 나가는가 하면, 자택격리 중이던 강남의 50대 여성은 지침을 어기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

밤낮없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던 병원 의료진의 어린 자녀는 신상이 털려 ‘메르스’라는 치욕적인 별명이 붙어 따돌림을 당했다. 힘겹게 완치한 이들에게도 낙인을 찍는 못된 이기주의까지 급박한 국가 의료재난 사태임에도 참으로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위기 상황 속에 생긴 두려움은 잘못된 정보와 루머를 양산한다. 이런 루머들은 SNS와 미디어를 타고 눈 깜짝할 사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s)의 합성어인 ‘인포데믹스’(Infodemics)가 바로 그것이다. 21세기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인포데믹스 위력을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또 한 번 진하게 경험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며 정부와 국민, 그리고 사회 불신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를 실감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국민도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과 가족을 온전히 지키기 힘들다.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감염 질병의 공포도, 불신사회의 두려움도 아닌 진실과 소통의 중요성인 듯하다. 정부가 숨김없는 진실로 소통할 때 국민 역시 높고 두꺼운 불신의 벽을 서서히 허물기 시작할 것이다. “국민은 진실을 원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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