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속 역사이야기]신경직 LH공사 충북본부 부장

우리나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충청도는 그 지정학적 이유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그 영역을 확대하고자 서로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곳이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고장에는 그 당시의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전해주는 지명이 여기저기 남아 전해지고 있다.

오는 9월 유기농엑스포가 열리는 충북 괴산(槐山)은 언뜻 괴이한 나무들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라 보이지만, 이 지명 속에는 신라와 백제의 치열했던 전쟁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때는 서기 611년, 이곳을 지키던 신라의 장수 찬덕(讚德)이 백제군의 침략에 맞서 100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찬덕은 결국 백제에 패하자 성안에 있는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아 자결했다. 이후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무열왕이 찬덕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느티나무를 많이 심어 이곳을 ‘느티나무 괴(槐)’자를 써서 괴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괴산군의 지명 속에는 지금부터 1400여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또, 대청호변의 아름다운 마을 대전시 동구 직동(稷洞)의 지명에도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언뜻 보면 마을 지형이 직선(直)으로 뻗어 나와 ‘직동’이 되었나 싶지만 사실 이 직동은 백제와 신라군이 서로 싸우다 백제군이 신라군에 의해 몰살되면서 백제군의 피가 냇물을 이뤘다 하여 지명이 ‘핏골’이 됐고, 이를 한자화 하면서 ‘피 직(稷)’자를 써서 직동(稷洞)이 됐다고 한다. 평범해 보이는 지명 속에 이러한 섬뜩한 역사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행정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는 세종시의 부강면(芙江面)은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펴면서 백제, 신라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백제와 신라를 공략하기 위해 이곳을 순시하다 강 건너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의 이름을 묻자, 신하가 당나라 상인들에 의해 번식된 ‘부용화(芙蓉花)’라 하면서 이 일대를 부강면(芙江面)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연개소문이 이곳까지 내려와 신라, 백제 삼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왠지 듣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 외에도 우리지역에는 삼국의 각축으로 생겨난 지명이 여럿 있다. 백제의 한 장군이 고구려와 싸우다 싸움에 져 활(弓)을 꺾은 고개라 하여 붙여진 청주시 청원구 ‘궁현리(弓峴里)’, 신라의 화은대사가 몰래 승병을 양성하였다는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의 ‘양승산(養僧山)’은 이후에 양성산(養性山)이라 불리고 있다.

양성산의 승병들이 바위(岩) 사이에서 자란 대나무(竹)를 베어 죽창을 만들었다는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의 ‘죽암리(竹岩里)’, 백제군이 신라군에 패해 몰살됐다 해 붙여진 대전시 동구 신하동 ‘백골산성’, 백제 무왕 때 장수 이사진(伊斯珍)이 고구려군을 대파한 후 그 시신을 대충 그을려 처리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청주시 청원구 내수면의 ‘끄시럼터’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지명 속 역사 유래는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유독 충청도에 많은 것은 우리고장이 삼국시대의 군사적 요충지로 각축장이 된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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