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현 사진작가

사립문 너머 바깥마당에 서너 그루의 미루나무. 그 미루나무 잔가지를 이리저리 놀리며 부는 바람 저편의 뿌옇게 감싸는 연무를 뒤로 하고, 산마루엔 먹장구름이 금세 비를 몰고 올 기세다. 아니, 바깥마당과 연해 있는 농토 저 끝에 움직임이 있다. 아낙네 둘이 호미를 내던지고, 뛰고 닫는 폼으로 봐선 이미 한 차례 소나기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리라.

전형적인 농촌주택이다. 남향인 일자형에 우측으로 사랑방 두 칸과 외양간을 덧댄 툇간이다. 사랑방을 마주하고 토광이 둘 있었는데 탈곡한 낟알을 쏟아 붇는 곳으로 몇 백 섬은 족히 드는 곳간이다. 이십여 보 떨어진 곳에 헛간과 잿간, 그리고 각종 알곡을 저장하는 광이 하나 덧붙어 있었다. 그 광과 외양간을 잇는 어른 키를 웃도는 담장과 대문이 하나 있었다. 대문을 나서면 너른 광장이 나오는데, 가으내 탈곡을 위한 마당이라 가을걷이가 끝나면 산처럼 높은 짚가리만 몇 채 남겨놓고 대부분 허옇게 비어있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툇마루에 나앉으면 어른 키를 웃도는 담장 너머로 모든 것이 보였다. 하얗게 비어있는 마당과 들녘, 그 들녘을 가로지르는 백사천의 제방, 몇 마장쯤 떨어진 곳에 합수머리께의 협곡에서 시작되는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이 비로소 시야를 멈추게 했다. 조짐은 미루나무 끝에서부터 온다. 먹장구름이 걸리기도 하고 비보다 먼저 바람이 우듬지를 감돌면서 잔가지들을 부딪히게 했다. 그러다 보면 산을 넘은 바람이 들녘을 휩싸면서 비를 몰고 와 마른 마당을 ‘후드득 후드득’ 흥건히 적시곤 한다.

십여 호 남짓 되는 마을 끝자락에 합수머리 쪽으로 나앉은 집이다. 게다가 지대가 높은 집의 툇마루는 마치 여객선의 갑판을 연상케 했다. 들녘에 비가 들이치거나 하면 벼 포기가 푸르게 자란 들판은 비바람에 이리저리 쏠려 마치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는 듯했다. 이때는 격랑에 휩쓸린 난파선의 선장이 되곤 한다. 비바람을 몰고 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성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비장미까지 들곤 했으니 말이다. 그 땐 모든 것이 좋았다. 우비를 입고 삽 한 자루에 의지해 물길을 트고 동분서주 하는 농부의 모습도 한 폭의 동양화였다.

비가 갠 다음 날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미꾸라지가 마당에 꼼지락대곤 했다. 학교를 파한 까까머리 형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도랑물이 불어있어 역류하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오른 미꾸리며 팔뚝만한 붕어들을 낚는다. 그저 얼기미만 물속에 잠시 대어도 된다. 한 종자기는 족히 되는 미꾸리가 올라왔다. 족대를 대면 은빛 붕어들이 파닥이며 올라왔다. 범람했던 물이 빠져나가고 이내 벼 포기가 보이고 논에 물이 자작해지면 미처 논배미를 빠져나가지 못한 큰 고기들이 파닥파닥 몸을 뒤채며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메기, 붕어, 잉어 따위를 망태기에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봇도랑이라도 터질세라 삽 한 자루 들고 비를 가릴 우비 하나 걸치고 동분서주하며 안타까워하던 어른들, 그저 그들의 눈길만 피하면 언제 어디서고 비 오는 날이 마냥 즐거웠다. 인간이 자연과 맞닥뜨려 몸으로 느껴 알던, 사물의 이치를 홀로 알아채던 그 풍요로웠던 정신의 시대, 그 시대는 이미 가고 없다. 아마도 일고여덟 살배기의 기억들은 더러는 덜어지고 잊혀져, 또 다른 가공의 상상력으로 다듬어져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꿈속에도 나타나 이 각다분한 현실에 정신의 수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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