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조재근 온라인뉴스부 차장

요즘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한동안 뜸했던 정치풍자 개그들이 속속 등장해 갑갑한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KBS 공개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도 그중 하나다. 이달 초 개그콘서트는 ‘민상토론’이란 코너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 코너는 진행자가 사회적 이슈나 정치인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패널로 출연한 개그맨들에게 방송에서 대답하기 곤란한 민감한 정치적 견해를 묻는 등 황망한 개그맨 반응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마치 종합편성채널에서 유행하는 여러 토론 방송을 흉내 내며 세태를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실제 최근 방송에선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라고 묻는가 하면 출연 개그맨에게 비타민 음료를 나눠주면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연상케 했다.

특히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공세에 한 개그맨이 “어디 외국이라도 가야겠다”고 말하자, 진행자는 “지금 이 시기에 꼭 외국 나가셔야 되겠습니까?”라며 쐐기를 박는다.

이 코너 외에도 요즘 들어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과 다수 케이블채널에서도 한동안 주춤했던 정치풍자가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방송에서 정치풍자가 코미디 소재로 본격 사용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다.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정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을 개그 소재로 사용해도 된다고 공약하자 방송에선 정치풍자 코미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KBS <유머 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쇼 비디오자키> ‘네로 25시’ 등이 대표적이다.

고(故) 김형곤 씨는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서 재벌 기업 회장역을 맡아 당시 정치 세태와 부패한 재벌을 풍자했다. 최양락이 네로 황제를, 임미숙이 날라리아 왕비를 맡은 ‘네로 25시’에서는 로마 시대 원로원을 배경으로 정치인 비리와 거대 기업들과의 유착 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이처럼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정치풍자 개그가 다시 살아나고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현재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 어느 때보다 정치적 사회적 현실은 갑갑하고 그 어떤 정권보다 떠들썩한 이슈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기에 팍팍한 서민의 삶까지 더해지면서 세태를 꼬집는 풍자 개그가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에선지 요즘 풍자 개그는 과거와 비교해 더욱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 듯하다.

서민의 답답한 현실을 그나마 웃음으로 풀어주는 정치풍자 개그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고 안타까운 부분도 적지 않다. 정치풍자 개그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방증이다. 또 서민 현실이 점점 갑갑하고 팍팍해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얼마 전 개그 콘서트를 함께 보던 초등학생 아이가 “비타민 음료는 왜 나눠줘?”라고 물을 때 명쾌한 답변을 내지 못해 머뭇 거리던 나 자신이 TV 속 개그맨과 뭐가 다를까? 웃음과 조롱거리가 된 어른들의 정치 현실이 그저 낯부끄럽기만 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