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본사 명예회장

막 새해가 시작된 지난 1월 9일 저녁, 세계적인 기계공학자이며 터보기계생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헌석 씨는 다른 억울한 일로 경찰의 도움을 받기 위해 주거지 관할인 대전 중부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런데 민원을 접수하던 경찰관은 컴퓨터에서 이 씨가 미국으로부터 범죄인 인도대상자로 수배된 사실을 발견하고 '민원인'이 아닌 '피의자'로 체포했고 즉시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은 다시 서울로 이송, 지난 2월 17일 서울고법의 범죄 인도판결을 받고 구속수감 됐다. 전혀 예상도 못했고, 당국의 도움을 받으러 나섰던 그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 그리고 황당함 뿐이었다.

그는 곧 미국으로 압송돼 미국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될 운명이다.

SBS 등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 85학번으로 삼성항공 등에서 일하며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받는 등 한국 터보기계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독일을 비롯, 기계공업의 선진국에서까지 명성을 떨쳤다. 터보기계는 산업현장에 꼭 필요한 핵심기계다. 그러던 그는 터보기계를 직접 생산하는 창업을 하게 됐고 2010년 말 미국 일리노이 등 6개 도시의 하수처리장에 수출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간에 쫓겨 미국에 있는 이 씨의 현지 지사에서 반제품을 납품하면서 직원들의 실수로 완제품처럼 'Made in U.S.A'라고 표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원산지 표시'를 잘못한 것. 당시 미국은 국내 특수 분야의 산업보호를 위해 미국의 공공기관에서는 미국산을 구매하도록 법령을 시행중이어서 마치 이 규제를 뚫기 위한 '사기'처럼 되어 압류와 함께 벌금도 물었다는 것.

이 씨는 이것으로 사건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5년 동안 이 씨도 모르게 사태는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은 '사기미수'로 이 씨를 '범인인도청구협약'에 의해 한국사법당국에 미국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씨의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구속 상태에서 미국으로 보내기로 한 것. 따라서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고 수백 명의 직원들과 가족들의 앞날이 캄캄해진 것이다. 특히 이 씨의 13살 난 막내는 중증장애인이어서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죄가 있으면 그에 따른 상응한 조치는 당연하다. 그러나 소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살인범이나 강도에까지 구속심사를 하는 마당에 맞바로 신병을 구속하고 미국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미국은 아직도 4년이 되도록 우리가 인도를 요구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용의자 피터슨을 보내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용의자가 재심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론스타사건'의 대표 스티븐 리에 대해서도 우리 사법당국이 인도요청을 했지만 9년째 보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입장에 비하여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국민을 미국에 인도하는 것 아닌가? 다행히 성균관대 김민호 법학과 교수 같은 경우 자국민불인도의 원칙. 즉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자국민을 외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가능하면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등 그를 돕자는 소리가 SNS상에서 번지고 있다. 특히 그가 대전시민이라는데 우리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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