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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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출신 모 인사가 자별하게 지냈던 A 씨를 입원한 병원으로 지난여름 문병을 다녀왔다고 한다. A 씨는 장관을 역임하는 등 정부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최근 치매에 걸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문병 온 사람들이 다정하게 지냈던 동료였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니 답답하고 안타까웠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마침 병실에 있던 TV에서 국회 청문회 뉴스가 나오니까 A 씨의 표정이 달라지며 긴장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장관임명 때 국회 청문회에서 당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그 청문회 질의가 가슴에 못이 박혔으면 '치매'의 망각증세 속에서도 솟구쳐 올라왔겠냐는 것이다.

A 씨는 청문회 뉴스가 끝나자 또 다시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망각의 늪에 빠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기막힌 일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포청천'처럼 호통 치던 국회의원이 얼마 안 있어 비리사건에 연루돼 의원직을 상실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영국, 독일, 이태리 등 유럽의 주요국가 중에 인사청문회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나라인데 미국은 청문회에 나오기 전 FBI 등을 통해 사전검증이 거의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 청문회에서는 정책수행능력에 치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100년 전 조상이 저지른 행위까지 뒤집어 써야하고 사전에 걸러져야 할 병역문제, 주식이나 보험 등 금융자산 누락 등에 매달려 시간을 다 소비해 버리기 때문에 정작 다루어야 할 문제는 못 다루고 마는 것이다.

가령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이 임진왜란을 겪고 오늘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병조판서나 국무총리에 임명돼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임진왜란의 본질적 정책문제는 제쳐놓고 당파의 '진영논리'로 패가 갈려 비난을 위한 비난, '아니면 말고'식 폭로전이 이어질 것이다.

이순신은 동인(東人)의 유성룡에 의해 천거된 인물이니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西人)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일개 정읍현감에 불과하던 이순신을 유성룡이 일약 전라좌수사로 몇 단계나 뛰어 파격적 승진을 시킨 것을 따질 것이다.

장군의 뛰어난 능력을 발견한 유성룡이지만 정실인사로 몰아 부칠 것이고…. '난중일기'에 쓰여진 대로 전투에 앞서 점(占)을 보거나 때때로 술을 많이 마셔 괴로워했던 사생활까지….

그 폐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도 총리나 장관에 지명되면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방에서는 대전시 마케팅공사 사장청문회에서 보듯 '부적격' 여론과 상관없이 청문회가 거수기역할로 끝나는 문제점도 있다.

마침 여·야 모두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회차원에서도 국회개혁자문위원회(위원장 최석원 전 공주대 총장)를 가동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기회에 사람 잡는 청문회가 아니라 당파를 초월한 합리적 인물검증, 정책검증 청문회가 되게 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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