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근 온라인뉴스부 차장

얼마 전 조선의 마지막 칼잡이가 총잡이로 거듭나 민중의 영웅이 된다는 다소 흥미로운 소재의 드라마가 방영됐다. 이름하여 ‘조선총잡이’인데, 이 드라마는 개화기에 접어든 1880년대 조선 말기의 역사적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극중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총을 잡고 결국 민중을 이끄는 전사가 된다는 다소 허구의 요소가 적지 않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84년(고종 21)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개화당)는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다. 대외적으로 청나라와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문벌 폐지와 인민평등권 제정 등 중세적 신분제를 청산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은 역사에 알려진 대로 ‘3일천하’로 끝이 난다.

그럼에도 갑신정변은 국민주권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정치개혁이자 근대 한국의 민족운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신분에 따라 천대와 핍박을 받지 않고 ‘약자가 없는’ 그런 나라였을 것이다.

100여 년이 훨씬 지나 자유와 주권, 그리고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국법(헌법)으로 정한 대한민국은 아직도 ‘약자를 위한 나라’는 아닌 듯하다.

“약자를 위한 그늘이다. 민생을 먼저 살피겠다”며 입에 꿀을 바르고 서민에게 온갖 아양(?)을 떨어 벼슬에 앉은 정치인들이 ‘민생’은 뒷전이고 끝없는 정쟁 노름에 빠진 모습은 권력에 눈이 먼 조선 시대 양반이나 다름없다.

세월호 참사 발생 150여 일이 넘도록 특별법 문제로 공전 상태를 거듭하는 국회 역시 ‘민생’을 논할 자격조차 없는 조선의 양반들이다. 참사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조속한 사고수습과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대통령은 눈물까지 흘리며 사과했다. 하지만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 유족의 고통과 울음은 더 커졌고, 함께 눈물 흘리며 아파했던 국민의 갈등과 반목은 더 극심해졌다. 세월호법 논란이 장기화하면서 결국 국민은 분열하고 민생도 발목이 잡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민생을 먼저 챙기고 약자의 편에 서겠다던 잘난 정치인들이 만든 최악의 작품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애초 세월호법 제정 취지에 충실했다면 이런 난국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무언가를 감추고자, 또는 혼란을 틈타 반사이익을 보려는 얕은 술수를 버리고 모두 한마음이던 참사 당시를 떠올려 약자(유족)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사분오열된 국민 여론도 봉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대한민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각박해진 국민 마음에 무한한 감동과 큰 울림을 남겼다. 교황은 4박 5일간 쉼 없이 대한민국 곳곳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몸을 낮춰 약자의 손을 잡았다. 그가 왜 ‘약자들의 성자’로 불리는지 몸소 보였다.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교황이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을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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