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대전 중구 태평전통시장 ‘늘푸른 야채가게’ 임승군 씨
부모님 장애… 어릴적 설움겪어
23살 시장 생선가게 점원으로
16년 만에 야채가게 사장님
9년째 독거노인 먹거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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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난하고 소외돼 봐서 그 마음을 알아요. 그러니 어떻게 돈 한 푼 더 모으자고 나 혼자만 잘살아요. 마음 불편해서 그렇게는 못 살아요.” 그는 진정으로 탁월하다.

성실과 선함의 완벽한 어울림이 ‘탁월함’이라면 태평동 ‘야채 요정’ 임승군(46) 씨는 단연코 탁월한 사람이다.

대전시 중구 태평동 노인들에게 그는 조용히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고, 홀연 사라지는 요정 같은 존재다.

쌀이고 배추고 과일이고 철철이 떨어지지 않게 형편 어려운이웃에게 전하면서도 앞에 나서는 일만큼은 참을 수 없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제가 얼굴을 비치면 나이 드신 분들이 어린 사람에게 고맙다며 고개 숙여야 하잖아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생선가게 점원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한 전통시장 야채가게 사장님’이란 ‘단순화’가 그에겐 모욕적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임 씨가 대전에 온 건 1990년 23살때 이다. 그의 부모는 청각장애와 지체장애자였고, 그 아래로 공부시킬 동생이 3명이나 있었다.

집안의 생계를 어깨에 멘 그는 전통시장 안 생선가게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생선가게에서 일한 시간이 쌓여 집도 사고 동생들 장가도 보냈다. 그리고 2006년, 대전 온지 16년 만에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됐다. 태평전통시장 안 ‘늘푸른 야채 가게’. 그는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성실하게 전통시장을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때도 지금도 전통시장에 젊은 사람이 없어요.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서 힘쓰는 젊은이는 그만큼 더 쓸모도 많고 경쟁력도 있죠. ‘시장서 일하면 결혼도 못 한다’는 뭣 모르는 사람들 소리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즐겁게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꿋꿋한 발걸음은 동생들에게도 길잡이가 됐다.

지금은 충남 금산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셋째를 뺀 나머지 3형제가 태평시장에서 3곳의 야채·과일 가게를 꾸리고 있다. 형제의 정(情)이 넘치지만 그 사이에도 아픈 기억은 자리한다.

“부모님의 장애로 어린 시절 우리 형제는 많은 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것이 있었죠. 그런 아픈 마음이 우리 형제가 서로를 이해하고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태평동에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쌀과 야채, 과일 등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챙겨드린 것이 벌써 9년째다. 태평동 노인정에도 정기적으로 쌀과 부식을 대고 있다.

“이 동네 분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먹고사는 거잖아요. 번돈에서 일부를 이 공동체에 환원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칭찬받을 일도 아니에요.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동생들과 함께 세워놓은 철칙이죠.”

반갑다. 사람 밥줄을 놓고 주판알만 굴리기 바쁜 저열한 세태 속, 마치 사막에서 만난 ‘요정 지니’처럼 그가 몹시 반가웠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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